본문 바로가기

붉은수염

에스프레소 한잔.

지혜가 꽃 처럼 피어나라.





집 밖에서 집을 보네
밤이 새벽으로 건너가는 시간
금성이 춥게 빛날 때
울다 잠든 아내 두고
집 밖에서 뀅한 눈으로 내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네
저 칸칸이 토굴 같은 시커먼 아파트 덩어리
모래와 시멘트로 뭉쳐진 커다란 산
저 속에서
그만 살 것처럼 사랑하고
또 다 산 것처럼 싸우고
옷 벗고 뒹굴고 또 옷 입고 종주먹을 들이대고
나날을 최후처럼 살았네
불현듯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
돈황의 막고굴이 떠올랐다네
커다란 산에 층층이 동굴을 뚫고 수도승들은
화엄세계를 새겨 넣으려
굴 밖에 거울을 세워두고 빛을 반사시켜 들여서
몇 십 년 몇 백 년 작업을 했다지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그들에게 차라리
내가 버리고 싶은 이 사바가 극락쯤은 아닐 될까
그래, 나의 이 고해가 극락이라니
목말라 물을 찾다 밤새 술만 들이켰던 그곳이 우물터였다니
수많은 생불들이 불을 켜는 새벽
나 옷깃 여미고 저 사원으로 돌아가겠네


- 복 효근 시 ‘세속 사원’모두
[마늘촛불], 애지,2009.


* 살면서 나이를 먹는게 어떤 느낌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 한 적이 있다. 쉽게 대답하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할 일’을 다해가는 것이 나이를, 원숙함으로 가는것이 아닌가.., 새삼, 나를  스스로 거울에 비추어 보고, 결코, ‘낯 섫지’않은 얼굴에 감사한다. 아직은 어린시절 상상 했던 ‘내 모습’이 아니라고 미안 해 하지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정겨워 지고 어깨라도 칠 만큼 가깝게 느껴지니 고맙다.

삶을 살아오면서 어울리지도 않게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말들을 훈수 두듯이 한것이 부끄럽다. ’따스함‘ ’지성‘ ’숙성된 말, 사고‘ ’집단 지성‘ ’버리기‘ ’눈물‘ ’무소유‘ ’최선의 삶‘ ’버티기‘…,

조절 할 수 있다고, 길은 정해져 있고 코스에 따라서 이리 저리 방법을 찾아 조절을 하는데,, 쉬운 길이 없다. 식이조절로 한동안 고생을 했는데, 혈관문제, 투석 팔의 통증 조절.., 계속해서 ‘이상 신호’가 온다. 당연 한 일이다. 들어오고 나가는 순환이 순탄치 못하니, 투석을 통하여 혈관의 찌꺼기와 과한 수분을 필터를 통하여 기계적으로 걸러내니 피부가 건조 해지고 약한 광선에도 쉽게 피부가 탄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피부.  내가 남을 보면서 잘 보이던 것이 이제야, 내 눈에 들어온다. 현실에서 ‘아닌 척’ 부인해도 결국에는 그것이 ‘내 모습’ 이였지..,




‘껍대기’를 모두 태워버려야 한다.





입산 3년 만에 주먹밥이 떨어졌다
피아골 비밀 아지트에서 막 동면을 끝내고
반달가슴곰의 부스스한 얼굴로 하산하는 길
서굴암 석실의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는데
주먹 크기의 모조 금동불상 아래
시주금 1만 8300원이 놓여 있었다
그 어떤 노할매의 간절한 기도일까
애써 외면하며 돌아서는데
금동부처가 자꾸 불콰한 소주병으로 보였다
돈 안 벌고 못 벌고 돈 안 쓰며
산짐승처럼 살다 보니 단 한 푼도 없었다
한참 내려오다 돌아가 날름 3000원을 훔쳤다

외곡검문소 앞 슈퍼에서 소주 두병을 사니
도둑놈의 걸음걸이가 경쾌해졌다
피아골 피아산방에서 이승의 마지막 술이려니
일단 소주 한 병을 목구멍 폭포에 털어 넣으니
초승달이 뜨고 자꾸 저승 새가 울었다
서굴암 석실 속의 모조 불상이 생불처럼 보였다
아직도 한 병, 일곱 잔 반이 남았으니
하루에 한 잔, 티스푼으로 떠 마시는 술마저 아까웠다

지리산하 외딴집에서 마지막 한 잔 마시는데
거짓말 좀 보태 58분 47초가 걸렸다
목마른 병아리처럼 쇠젓가락으로 찍어 마시니
어느새 입속은 소주 바다, 혓바닥은 해일주의보
단 한 잔만으로도 알딸딸하니 극락의 잠이 들었다


- 이 원규 시 ‘소주 생불’모두
[달빛을 깨물다], 천년의시작, 2019.



* 출퇴근 길을 오가며 보이던 노숙자들의 지친 ‘눈빛’과 거칠고 때묻은 ‘손마디’가 떠오른다. 삶에,  인생에 지치지 않아야 하는데, 때때로 힘에 부치는 나를 본다. 하루에 두끼씩 절식을 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체중을 재 보며 ‘건체중’과 ‘혈액의 수치’에 일회일비 하다가, 늦게 들린 마트에서 ‘떡 한보따리’ 구입 했다. 밀가루가  포함 되여 있는 음식은 끊어야 한다. 출출하면 이제는 오직, 김밥. 쳐다보지도 않던 ‘삼각김밥’을 맛 종류 별로 다 맛보고 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은 하루씩 건너서 비가 오더니 오늘은 제법 빗줄기가 굵다. 장마 다. 비가 내리는 목요일은 습기와 더위로 답답해져서 우울하다. 이럴 때에 꽃을 사서 가슴에 않은 여자의 모습은 신선하다. ‘꽃 만큼 아름답다’ 라고 할까!.. 진갑을 넘기고도 삶이 전혀 가볍지 않고 묵직하게 느껴지니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은 것인지, 사람을 대하면서 아직도 설레긴 하는데, 떨리긴 하지만 심장이 쿵쿵 거리며 살아있는 느낌. 고맙다.  삶에 있어서 좀 더 ‘화. 이. 팅.’이 필요하다.



시간을 느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각자의 역량에 따라 짧게도, 길게도 흘러가는 시간을…,












'붉은수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능소화의 추억.  (0) 2023.08.15
집보다는 길에서,  (1) 2023.08.12
* 정진(精進).  (0) 2023.06.22
‘배 고픈’ 식당/슬픈 ‘허기’  (0) 2023.06.15
높고 푸르른 날의 시 - 歸天.  (1) 2023.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