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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요 해 질 때, - “The Music Played”. 오랜만에 광화문에서 일산 가는 완행버스를 탔다 넓고 빠른 길로 직행하는 버스를 보내고 완행버스를 탄 것이다 이곳저곳 좁은 길을 거쳐 느릿느릿 기어가는 완행버스를 타고 가며 남원추어탕집 앞도 지나고 파주옥 앞도 지나고 전주비빔밥집 앞도 지나고 스캔들양주집 간판과 희망맥주집 앞을 지났다 고등학교 앞에서는 탱글탱글한 학생들이 기분 좋게 담뿍 타는 걸 보고 잠깐 졸았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뉴욕제과를 지나서 파리양장점 앞에서 천국부동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천국을 빼고 이미 내가 다 여행 삼아 다녀본 곳이다 완행버스를 타고 가며 남원, 파주, 전주, 파리, 뉴욕을 다시 한번 다녀온 것만 같다 고등학교도 다시 다녀보고 스캔들도 다시 일으켜 보고 희망을 시원한 맥주처럼 마시고 온 것 같다 직행버스로 갈 수 없는 곳을 .. 더보기
심장이라는 사물 2 / 한 강 시. 오늘은 목소리를 열지 않았습니다 벽에 비친 희미한 빛 또는 그림자 그런 무엇이 되었다고 믿어져서요. 죽는다는 건 마침내 사물이 되는 기막힌 일 그게 왜 고통인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 한 강 시 ‘심장이라는 사물 2‘모두 * 시집 :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중에서, ** 죽고 나면 ‘사물’이 된다는,,. 나에겐 새로운 ‘시각’. 온전히 자연이 움직여주고 이동해 주는 ‘사물‘ 자연의 한 티끌, 사람에게 온전한 ’ 자유의지’라는 게 있는 걸까? 한 강 작가의 ‘흰’이란 책을 읽다가 그녀의 이 시가 떠올랐다. 모두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때에 내 모습이 온전히 보이는 듯, 더보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 한 강 작가. * 출처: 서울신문 캡쳐 화면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서울의 겨울 12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 더보기
하늘이,, 높고 푸르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木馬를 타고 떠난 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떠어진다 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小女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愛增의 그림자를 버릴 때 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木馬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 더보기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언제 헤어졌느냐는 질문에 그들이 헤어진 시점을 정확히 말하기는 쉽지 않다 정말 헤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척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헤어진 척하다가 결국 헤어진 사람들도 있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무심코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결혼에서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법원에 접수된 서류와 그가 마지막으로 열고 나간 문의 침묵 사이에는 꽤 긴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길에서 그와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못 본 척 스쳐가는 몇 초가 아주 길게 느껴졌다고 결코 무심할 수 없는 순간이었지만 아릿한 슬픔을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고 종이 위의 결별과 길 위의 결별 사이에는 또 얼마나 많은 밤들이 들어차 있는.. 더보기
짙게 내린 아메리카노 한잔. 마늘과 꿀을 유리병 속에 넣어 가두어두었다 두 해 가 지나도록 깜박 잊었다 한 숟가락 뜨니 마늘도 꿀 도 아니다 마늘이고 꿀이다 당신도 저렇게 오래 내 속에 갇혀 있었으니 형과 질 이 변했겠다 마늘에 緣하고 꿀에 연하고 시간에 연하고 동그란 유리병에 둘러싸여 마늘꿀절임이 된 것처럼 내 속의 당신은 참 당신이 아닐 것이다 변해버린 맛 이 묘하다 또 한 숟가락 나의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해 줄 마늘 꿀절임 같은 당신을,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 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 - 조 용미 시 ‘ 가을밤‘ [기억의 행성], 문학과 지성사, 2011. * 올해는 가을이 태풍과 많은 비로 요란스럽게 다가왔다. 기후의 변화로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점점 더 짧아지느니, 이 모든 변화가 우리.. 더보기
원두커피 Note, 1) 로스팅의 단계. 국내에서는 보편적으로 일본의 8단계 분류법에 따라 로스팅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8단계 로스팅의 단계별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최약배전인 라이트 로스팅부터 최강배전인 이탈리안 로스팅까지 배전도에 따라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스팅 단계별 특징을 표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하나씩 살펴볼까요? 배전도 SCAA 분류법 색깔 커피 맛과 향 ———————————— 라이트, 최약배전 #95 Very Light 밝고 연한 황갈색 신향, 강한 신맛 시나몬, 약배전 #85 Light 연한 황갈색 다소 강한 신맛, 약한 단맛과 쓴맛 미디엄, 중약배전 #75 Moderately Light 밤색 중간 단맛, 신맛, 약.. 더보기
달고 씁쓰레한 차한잔 마시고 싶을 때, 당신은 홍차에 레몬 한 조각을 넣고 나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쌉싸름한 맛을 좋아했지 단순히 그 차이뿐 늦은 삼월생인 봄의 언저리에서 꽃들이 작년의 날짜들을 계산하고 있을 때 당시은 이제 막 봄눈을 뜬 겨울잠쥐에 대해 말했고 나는 인도에서 겨울을 나는 흰 꼬리딱새를 이야기했지 인도에서는 새들이 흰 디어로 지저귄다고 쿠시 쿠시 쿠시 하고 아무도 모르는 신비의 시간 같은 것은 없었지 다만, 늦눈에 움마다 뺨이 언 꽃나무 아래서 뜨거운 홍차를 마시며 당신은 둘이서 바닷가로 산책을 갔는데 갑자기 번개가 쳤던 날 우리 이마를 따라다니던 비를 이야기하고 나는 까비 쿠시 까비 감이라는 인도 영화에 대해 말했지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슬프고 망각의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이 언젠가 우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새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