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반성.(2022) 깊이깊이 후회해 너를 사랑했던 것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너에게 내 시를 보여주었던 것 너랑 영화관에 갔던 것 너에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사주었던 것 네 품에서 알몸이 되었던 것 아무렇게나 던져진 텅 빈 우주에 너를 초대했던 것 너와 함께 비엔나의 숲속에서 치즈버거를 먹었던 것 너에게 가장 친한 내 친구를 소개했던 것 너 때문에 비 내리는 센강에서 울었던 것 너 때문에 불같이 타오르는 꽃잎 하나가 내게로 떨어졌던 것 너의 모든 말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환하게 웃었던 것 네가 한 모든 약속을 모래로 가득 채워 흘러버렸던 것 너를 떠나보내기 위해 나보코프를 읽으며 모나코 나비를 찾아 헤맸던 것 그러고도 네 꿈을 자주 꾸었던 것 그러고도 너와 함께 잘 먹던 꼬투리 완두콩을 아직도 좋아하는 것 그러고도.. 더보기 내 삶의 얼굴들.., 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신의 육체안에 있는 그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라. 내게 당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라, 그러면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리라.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비는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위로. 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 매 순간 세상은 당신을 초대하고 있다. - 메리 올리버 시 ‘기러기’모두 * 연륜을 더하며 ‘현명’해 진다는데,,, 그저 ‘어눌 해’지는 모양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Speed’의 시대에 살아 가는데 식사 한까, 커피 한잔을 마셔도 기계를 상대해야 한다. 몇번의 터치와 카드를 넣어야 결제.. 더보기 내려 놓아야 할 것들,, 그 무게. * 장례식장에서 / 김현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무를 먹는데 작고 밝은 것들이 웃었다 무지했다 바로 앉는 자세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런 식욕이 영정을 돌아보게 했다 불빛 환하고 죽은 사람이 한가운데 - 낮에 본 얼굴을 밤에 다시 봅니다.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 얼굴입니다. 그런 얼굴로 당신은 모르는 얼굴을 보고 나는 얼굴을 모릅니다. 두번 절하고 한번 맞절합니다. 그럴 때 어떡하든 얼굴을 피하고 싶습니다. 얼굴을 들 수 없어서 그게 밤 때문이라고 밤이 뒤통수에 달라붙어 고개를 숙이게 한다고 믿으며 밤하늘을 우뚝 올려다보는 겁니다.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자연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에서 자연이라는 말은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고개를 이편에서 저편으로 돌릴 때 흔들렸다 얼굴이 흔들리는 얼굴이 저만.. 더보기 12월의 시 / 최지은 그해의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조금 춥고 적막한 나의 방 창턱에 뜨거운 물 한잔을 올려두고 앉아 간밤의 꿈을 돌이키고 있었습니다 겁먹은 눈으로 등을 맞댄 채 서로를 지키는 두마리의 원숭이가 잠든 내 머리맡에 앉아 있는 걸 내가 다 지켜보는 꿈이었습니다 내 마음 가장 못생긴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 집에서 부모를 잃고 연이어 오랜 사랑도 잃고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란 뭘까 떠난 부모의 마음을 더듬고 후회하고 아파하고 두려워하며 열세번의 보름달을 바라보고 그런 내가 미워 모든 것이 미치도록 미워지던 그로부터 같은 꿈이 계속되었습니다 오늘 밤 다시 한해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모든 일을 옛일인 양 되돌리며 나만의 원숭이를 부르고 가까이 앉히고 눈이 마주칠 것 같습니다 정다운 나의 원숭이 이제 내 손을 붙잡고 나를 다.. 더보기 화양연화(花樣年華) / 발칙한 상상?! 치마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무언가 확실히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팬티 -문정희의 '치마'를 읽다가.. 더보기 El Condor Pasa..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장석남] 점등시간 77번 좌석버스를 탔다 나는 페루에 가는 것이다 시드는 화환처럼 해가 진다 바람은 저녁 내내 창 유리의 흰 페인트를 벗겨내고 있다 이른 산책의 별이 하나 비닐 봉지처럼 떴다 허공에 걸려 있는 푸른 풍금 소리들 나를 미행하는 이 깡마른 적막도 끝내 페루까지 동행하리라 철망 위에 앉아 우는 새 새의 울음속에 등불이 하나 내어 걸린다 페루의 유일한 저녁 불빛 밤새 파도들은 불빛으로 낮게 포복해 몰려와 몸을 씻고 있다 불빛을 따라간 한 목숨을 씻어주고 있다 나는 내내 페루에 가고 있는 것이다 새들의 페루 [신용목] 새의 둥지에는 지붕이 없다 죽지에 부리를 묻고 폭우를 받아내는 고독, 젖었다 마르는 깃털의 고요가 날개를 키웠으리라 그리고 순간의 운명을 업고 온다 도심 .. 더보기 김영원 시인의 詩 읽기. -끈 / 김영원 그렇게 수고하시던 여섯째 날 잠시 짬을 내신 하나님이 바둑의 신 알파고와 한 판 대국을 벌이셨다 반상의 우주에서 실수는 금물이다 어쩌다 자충수를 두고 발목을 잡힌 하나님 밑줄 치고, 복기하고 장고 끝에 그야말로 신의 한 수를 두었다 구사일생으로 꽁무니에 퇴로를 확보하고 끈을 하나 묶어놓은 것인데 질기고 영민하긴 괄약근만한 끈도 없다 기습적인 복병들이 허세인지 실세인지 재빨리 알아채고 때와 장소를 가려 절묘하게 열고 닫는다 생사를 책임지는 끈, 평생 써먹어야할 상책이다 우리 할머니, 어느 날 속곳에 핀 애기똥풀꽃 끈이 때를 안다는 뜻이다 - 의자가 많은 골목 / 김영원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한 의자는 있어도 한 번만 앉아본 의자는 없는 골목이다 불타는 파마머리로 정직한 거울을 감쪽같이 속여먹.. 더보기 ‘주문’을 외워봐~~ 이것은 주문이며 수행의 한 방법이다 아침에 한번, 자기 전에 한번, 하루 두 번 공복 상태에서 매일 따라하면 흐트러진 기를 모을 수 있고 잡념을 다스릴 수 있으며 마침내 고집멸도苦集滅道에 다다를 수 있다 살라가둘라 메치카볼라 티루카카 꾸르꾸르 칸타삐아 비비디바비디 부 이것은 사랑의 묘약이며 사랑의 세레나데다 이것을 외우면 기적처럼 사랑이 찾아올 것이다 부작용.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학자가 따라할 경우 호흡곤란이나 공황장애가 올 수 있음 주의, "너 미쳤니?" 혹은 "니가 도마뱀이냐?"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음 - 박제영 시 ‘살라가둘라 메치카볼라 티루카카 꾸르꾸르 칸타삐아 비비디바비디 부’ 모두 *안녕, 오타벵가, 달아실, 2021 * 새벽투석을 마치고 아점으로 ‘소머리국밥’ 한그릇으로 때우고,, 커피의.. 더보기 이전 1 ··· 29 30 31 32 33 34 35 ··· 1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