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장석남]
점등시간
77번 좌석버스를 탔다
나는 페루에 가는 것이다
시드는 화환처럼 해가 진다
바람은 저녁 내내 창 유리의 흰 페인트를 벗겨내고 있다
이른 산책의 별이 하나 비닐 봉지처럼 떴다
허공에 걸려 있는 푸른 풍금 소리들
나를 미행하는 이 깡마른 적막도
끝내 페루까지 동행하리라
철망 위에 앉아 우는 새
새의 울음속에 등불이 하나 내어 걸린다
페루의 유일한 저녁 불빛
밤새 파도들은 불빛으로
낮게 포복해 몰려와 몸을 씻고 있다
불빛을 따라간 한 목숨을 씻어주고 있다
나는 내내 페루에 가고 있는 것이다
새들의 페루 [신용목]
새의 둥지에는 지붕이 없다
죽지에 부리를 묻고
폭우를 받아내는 고독, 젖었다 마르는 깃털의 고요가 날개를 키웠으리라 그리고
순간의 운명을 업고 온다
도심 복판,
느닷없이 솟구쳐오르는 검은 봉지를
꽉 물고 놓지 않는
바람의 위턱과 아래턱,
풍치의 자국으로 박힌
공중의 검은 과녁, 중심은 어디에나 열려 있다
둥지를 휘감아도는 회오리
고독이 뿔처럼 여물었으니
하늘을 향한 단 한 번의 일격을 노리는 것
새들이 급소를 찾아 빙빙 돈다
환한 공중의, 캄캄한 숨통을 보여다오! 바람의 어금니를 지나
그곳을 가격할 수 있다면
일생을 사지 잘린 뿔처럼
나아가는 데 바쳐도 좋아라,
그러니 죽음이여
운명을 방생하라
하늘에 등을 대고 잠드는 짐승, 고독은 하늘이 무덤이다, 느닷없는 검은 봉지가 공중에 묘혈을 파듯
그곳에 가기 위하여
새는 지붕을 이지 않는다
페루 [이제니]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주황 보라. 모두가 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 양은 어떻게 웁니까. 메에 메에. 울음소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머리를 두 줄로 가지런히 땋을 때마다 고산지대의 좁고 긴 들판이 떠오른다. 고산증. 희박한 공기. 깨어진 거울처럼 빛나는 라마의 두 눈.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한다. 내 인식의 페이지는 언제나 나의 경험을 앞지른다. 페루 페루. 라마의 울음소리. 페루라고 입술을 달싹이면 내게 있었을지도 모를 고향이 생각난다.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페루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침마다 언니는 내 머리를 땋아주었지. 머리카락은 땋아도 땋아도 끝이 없었지. 저주는 반복되는 실패에서 피어난다. 적어도 꽃은 아름답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간신히 생각하고 간신히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영영 스스로 머리를 땋지는 못할 거야. 당신은 페루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미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입니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역시 이상한 말이다. 히잉 히잉. 말이란 원래 그런 거지. 태초 이전부터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무의미하게 엉겨붙어 버린 거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미쳐버린 채로 죽는 거지. 그렇게 이미 죽은 채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는 거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있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양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말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비행기 없이도 갈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다.
얼굴을 파묻다 [정끝별]
흐르는 것들에서는 묵은 쌀겨 냄새가 난다
갓 담근 술항아리에서 포도알을 훔쳐 먹고
얼굴을 파묻던 한마당의 쌀더미는 따뜻했다
누렇게 좀먹던 스무 살 페루의 하늘도
쏟아질 듯 무겁기만 하던 원산도 별밭도
비어 있던 대성리 철둑길도 그늘 무성해
소나기 퍼붓고 세상은 선뜻 변했다
쌀벌레들은 다시 쌀더미에 향기로운 집을 짓고
푸른 들판에 누워 한 백년쯤 자고 싶어,
지친 男子는 잎도 지기 전 창백한 女子를 떠났고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서늘한 질투도
이만큼 지나쳐서야 눈치채는 것인데
이 늦은 저녁 쌀을 씻으며
치댈수록 부예지는 쌀뜨물에 얼굴을 묻고
다행이다, 쌀벌레 껍질처럼
어제가 낙낙히 뜰 수 있다는 것은
부박했던 노래가 떠내려 갈 수 있다는 것은
촤르르 촤르르 말갛게 씻겨진 마음이
잘 익은 밥 냄새를 피워올릴 수 있다는 것은
제대병 [이성복]
아직도 나는 지나가는 해군 지프차를 보면 경례! 붙이고 싶어진다
그런 날에는 페루를 향해 죽으러 가는 새들의 날개의 아픔을
나는 느낀다 그렇다, 무덤 위에 할미꽃 피듯이 내 기억 속에
송이버섯 돋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내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오기도 한다 순지가 죽었대, 순지가!
그러면 나도 나직이 중얼거린다 순, 지, 는, 죽, 었, 다
아바타 없는 아바타 [박명보]
지상에서의 마지막 태양을 물고
새들이 사라져요
순례의 끝인 성지,
영혼이 노래로 울리는 곳
그곳을 페루라 말한다면
나 아직 페루에 가지 못했어요
몇 마디의 농담과 소량의 친절로 마감된
도시의 하루를 걸어두고, 잠시
떠나고 싶죠 자동차 불빛 사이를
어두운 회랑인 듯 걸어서
그리곤 바다에 닿고 싶죠
언젠가 내가 떠나왔던
바다의 소리를 기억해요
눈꺼풀이 생기기 전, 발톱이 자라기 전
그 알몸의 출렁임을
사람들은 쉽게 잊혀져요
클릭 하나로 변환되는 파일처럼
잘라내고 싶은 건
우아하게 물결치는 머리와 긴 속눈썹
나 아닌 내가 걸어가고 있네요
펄럭이는 옷자락이 붉은 신호등에 걸리네요
치정 같은, 오류 같은
아바타*없는 아바타
나, 아직 페루에 가지 못했어요
*아바타 - 인도어로 지상에 나타난 신의 분신, 사람의 내면에 있는 신성을 뜻함
오카리나 [유미애]
어느 저녁 당신이, 강가에 서 있을 때
푸른 견장의 후투티 한 마리 날아가던가요?
생강, 앵두, 잘 못 익힌 말들이 호루라길 불던가요?
새 모양의 악기를 산 건 열병을 앓은 후였죠
내가 지켜낸 것들이라야 노란 생강나무와 바위앵두
야무진 새의 주둥이를 입에 무는 순간
내게 악기를 판 페루 남자가 생각났어요
이글거리는 붉은 눈의 사내가 다가왔어요
나는 생강꽃이 지는 일보다 당신의 기억이 녹는 것보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여음이 서러워, 멍하니
그이의 목에 걸려 노래하는 새를 바라보았죠
바람 부는 섬에서 다시 만났을 때의 몰골이란
세상에나, 당신의 심장 같은 꽃은 지고
다시 싹 틔울 씨앗 하나 남지 않은
우리들의 황폐한 페루
그 페루 남자, 심폐소생술을 하듯
베들거리는 화분 속으로 두툼한 입술을 밀어넣었죠
파닥거리는 새들을 날려 온 검붉은 목
앵두, 앵두, 생강
악기 상자 속에 사는 작은 페루의 유령
열두 개의 촛불과 하나의 달 이야기 [박정대]
1 8인치의 강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좀 궁금해하겠지만, 나는 정해진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내 이름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불러다오.
당신이 오래전에 있었던 어떤 일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면, 예를 들어 누군가 당신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데 당신은 그 대답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아주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아니면 어떤 이들이 당신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했다. 당신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신이 한 것이 틀렸다고 말했다. <잘못해서 미안합니다> 하고서, 당신은 다시 뭔가를 해야 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그것은 당신이 아이였을 때 했던 놀이이거나, 아니면 당신이 늙어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마음속에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어떤 것이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당신은 어떤 강물 속을 응시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당신 가까이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악 당신을 만지려 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렇게 하기 전에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혹은, 당신은 아주 멀리서 어떤 이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메아리에 가까웠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당신은 침대에 누워 거의 잠들려 하고 있었는데, 하루를 끝내기에 아주 좋은, 뭔가, 혼자 하는 농담에 웃음이 나왔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혹은 당신은 뭔가 맛있는 걸 먹고 있었고, 자기가 뭘 먹고 있는지를 잠시 잊어버렸지만, 그러나 계속 먹으면서, 그게 맛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그건 자정 무렵이었고, 그리고 스토브 안에서 불길이 弔鐘처럼 울리고 있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혹은 당신은 그녀가 당신에게 그 일을 얘기했을 때 좋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그걸 다른 어떤 사람에게 얘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녀의 문제들을 잘 아는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쩌면 송어들은 깊고 잔잔한 곳에서 헤엄쳤지만, 그러나 그 강은 겨우 8인치 너비였고, 달이 아이디아뜨를 비치고 있었고, 그래서 워터멜론 들판은 걸맞지 않게 어둡게 빛을 발했고, 그래서 모든 초목들로부터 달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2 사천의 천사
당신은 나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천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길 위에서 길 위로 하염없이 떠날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정말 <길 위에> 있었고, 당신은 아마 천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때 천사에게 가는 길이 아니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3 눈물도 음악이 될 수 있다면
밥 딜런의 노래 듣고 싶어, 전속력으로 차를 몰아 42번 국도를 지나왔다. 지나오는 길에도 生은 내 갈비뼈 사이에서 푸른 잎들을 꺼내어 필사적으로 사랑을 흔든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눈물도 음악이 될 수 있다면,
난 참으로 오래간만에 음악을 들은 것이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4 만항재
아무리 달려도 이정표가 나타나지 않아 뒤돌아보면 좁은 산길 아래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나무들의 물결. 허공의 바다를 털털거리며 지난다. 갈매기 한 마리 날지 않는 이곳은 전생에 무슨 바다였나. 길이 좁아질수록 생각들은 날아가고, 길이 험해질수록 더욱 깊어지는 그리움의 계곡. 엄나무들은 엄숙하게 머리를 길렀지만 식솔들 이끌고 산 중턱까지 와서 정착한 낙엽송, 참나무 이주민들. 아무리 달려도 너에게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아 어느새 다다른 하늘 밑, 침묵은 끝나지 않고 바람 끝에 매달려 와서 끝내 만항재, 해발 1,330미터라고 씌어진 곳에서 불어가는 음악, 페루, 나비, 바람.
그것이 내 이름이다.
5 음악, 페루, 나비의 경계를 지나서
오래도록 꿈꾸던 것, 그것을 나는 만항재에서 본다. 만항재는 음악과 페루와 나비의 경계선. 이 경계선을 지나면 음악만이 남을 것. 그때부터 나는 눈을 버리고 음악을 얻을 것. 그리고 당신이 어느 날 참 많이 어두워져서 그때부터 음악 소리 들린다면,
그것이 바로 내 이름이다.
6 만항 이야기
만항이라는 곳. 이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집들이, 주인 잃은 배들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곳. 석양이, 열두 개의 촛불처럼 타오르는 곳, 허공에 매달린 항구, 만항을 지난다. 집들이 산비탈에 걸려, 컹컹거리며 짖고 있다. 내 어릴 적 검은 판자의 하늘이 , 허공에 걸려 나부낀다. 이것도 강원도식, 風磬이라면 풍경인 곳. 만항이라는 곳.
그것이 내 이름이다.
7 밤의 비탈길에서
만항 마을 지나, 저 속세로, 자장 율사가 창건한 정암사 찾아가는 길. 낮에, 자장면 한 그릇 먹고 그대 진신사리 찾아가는 길. 하산할수록 더욱 어두워지는 꿈. 양파처럼 별들 흩뿌려지는 밤의 비탈길에서, 텅 빈 그릇처럼 캄캄해져 오는 밤에서, 강원도라는 섬에서 잠들지 못한 산짐승들은 달빛을 향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8 다시 만항 이야기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를 나는 중얼거린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두워질수록 나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그대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이야기 속의 모든 것들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나는 어지럽지 않다. 견딜 수 있다. 내가 아픈 건 네가 아프기 때문이다. 갑자기 숲의 음악 소리가 커졌다. 바람이 아프기 떄문이다. 끊임없이 바람의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나무들이 아프기 때문이다. 누군가 끊임없이 술잔을 비운다. 술잔 밖 세상이 아프기 때문이다. 나는 어지럽지 않다. 견딜 만하다. 그러나 네가 아픈 건 내가 여전히 아프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9 또다시 만항 이야기
체, 체, 체, 게바라의 바람이 분다. 쿠바의 풀잎들은 여기에 없다.
만항의 오래된 바람이 분다. 내가 하염없이 신생을 꿈꾸며 떠난 여행길에서도 오래된 기억의 바람은 허공의 갈피갈피에서 나를 덮친다. 내가 만항을 지났던가. 나는 깊은 산속 어지러운 굴헝을 헤맨다. 쿠바의 풀잎들은 여기에 없다. 체, 체, 체, 거봐라, 혀를 차며 만항의 오랜된 바람이 분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10 밤의 여행자들
당신은 사는 게 힘겨워져 밤마다 어디론가 떠나는 꿈을 꾸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그 밤을 따라서 한없이 달려가다 보면 누군가를 혹은 당신이 알지 못했던 그 무엇인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신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동안에도 천사들은 쉽게 나타나지 않고, 당신은 수없이 촛불을 꺼트려야 했다. 촛불이 꺼진 깜깜한 어둠 속에서 당신은 오로지 믿을 수 있는 자신의 몸을 더듬어 길을 내고, 새롭게 이 세계의 지도를 그려야 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당신이 숨쉬는 매 순간의 공기들이 너무 답답해 어디론가 떠나려고 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허공에다 당신은 매일 간절한 키스를 한다. 그 입맞춤이 대지의 가슴에 닿아 그곳에서 아름다운 나무들이 태어나기를, 그 나무 아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머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어느 날 당신은 창밖에 환하게 핀 앵두꽃을 보고 밤이 어디론가 사라진 줄 알았다. 당신은 그 꽃을 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때로는 음악이 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매일 밤마다 촛불을 켜 들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11 천사들
숲에 가면 나뭇잎마다 천사들이 산다. 그 천사들은 당신의 한숨 속에서 태어났다. 당신이 매 순간 허공으로 천사들을 날려보낼 때마다, 당신은 또 하나의 촛불을 꺼트리고 있는 셈이다. 숲에 가면 나뭇잎마다 유배당한 천사들이 산다. 천사들은 나와 입맞추고 싶어한다. 나도 그렇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것이 내 이름이다.
열두 개의 촛불과 하나의 불꽃으로 나는 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산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불꽃의 線, 끝없이 움직이는, 일렁이는
발광하는 生
그것이 내 이름이다.
12 달과 하나의 촛불 이야기
나는 열두 개의 촛불을 다 꺼트리며 벽파령에 올랐다. 벽파령은 깜깜한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열두 개의 촛불이 다 꺼진 다음에야 가까스로 타오르는 하나의 거대한 촛불을 보았다. 그것은 달이었다. 달은 서서히 숲들을 지나 나에게로 왔다. 나는 달에게 나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달은 다만 내가 잃어버린 열두 개의 촛불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 이름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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