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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 8월의 시 / Je suis comme je suiis 나는 이런 사람 나는 이렇게 태어났지 웃고 싶으면 그래 큰 소리로 웃고 날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매번 다르다 해도 그게 어디 내 잘못인가요 나는 이런 사람 나는 이렇게 태어났는데 당신은 더 이상 무엇을 바라나요 이런 내게서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태어났지 그리고 바꿀 것도 하나도 없지 내 발꿈치가 너무 높이 솟았고 내 몸이 너무 휘었고 내 가슴이 너무나 거칠고 내 눈이 너무 퀭하여도 아무리 그래도 당신이 그걸 어쩌겠어요 나는 이런 사람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좋아 당신이 그걸 어쩌겠어요 결국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 누군가를 사랑했었지 누군가 날 사랑했었지 어린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듯이 오직 사랑밖에 할 줄 모르듯이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듯이... 어째서 내게 묻는 거.. 더보기
7월의 시 - 茶山草堂 / 황동규 1 만나는 사람들의 몸놀림 계속 시계침 같고 "반포 치킨"에 묻혀 맥주 마시는 내가 지겨운 기름 냄새 같을 때 읽는 책들도 하나같이 맥빠져 시들할 때 알맞게 섞인 잎갈이나무와 늘푸른나무들이 멋대로 숲을 이루고 서서 눈발 날리는 강진만을 내려다보고 있는 다산초당에 오르곤 한다, 는 실은 거짓말이고 다산 초당은 달포 전에 처음 갔다 해가 떴는데 눈발이 날리는 희한한 날이었다 몇 대의 버스와 택시를 종일 번갈아 타고 강진의 귤동 마을에 도착했다 공터에서 차의 맥박이 끊어지자 흰 눈발이 앞창을 한번 완전히 지웠다가 다시 열어 주었다. 2 바쁘게 뛰다 보면 온갖 냄새와 욕지기가 다 섞여서 멍하게 사는 것이 그 중 제일로 된다 혹은 띵하게 사는 것이...... 예전 같으면 왕들이 그 사정을 눈치채고 아랫사람들에게 .. 더보기
시인의 말 / 이 현승 참혹해할 필요 없다. 늦은 일요일 쇼펜하우어로부터의 연락,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 모른다. 밤사이에 늘어난 환자의 전문 지식이 주치의의 처방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진열대의 빈자리는 금세 메꾸어질 것이며 나는 통조림에도 고유번호가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과 절망을 동시에 느낀다. 우리는 그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그 무언가가 텅 비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조금 우울해질 수 있다. 괜찮다. 2007년 여름 이현승 단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일의 맛은 쓰다고 생각해서일까. 고된 일이 끝나면 몰려가 단 것을 마시는 사람들, 단것을 들고 만화방창 피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도 모르게 선명해지는 느낌, 홀로 설탕으로 결정되어가는 그런 느낌. 화살보다 뾰족한 혓바닥들이 들이닥칠 것 같은 느낌까지는 아니.. 더보기
다시 읽는 공광규 시인의 시,, 몇 편.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그늘 수십평과 까치집 세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 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엔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방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 꽃이 하얗게 덮인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 더보기
다시 읽는,, 나희덕 시인의 시 몇 편, 좋아하는 동사를 묻자 그는 흐르다,라고 대답했다 나도 그 동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흐르다,가 흘러내리다,의 동의어라는 것을 그저 수평적 움직임이라고만 생각했다 몇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다 눈물의 수직성을 눈에서 입술로, 상류에서 하류로, 젊음에서 늙음으로, 살아있음에서 죽음으로, 높은 지대에서 낮은 지대로, 어제에서 오늘로, 그리고 내일로, 최초의 순간에서 점점 멀어지는 방식으로,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의 방향으로, 기억의 밀도가 높은 시간에서 낮은 시간으로 흐르는 모든 존재는 흐르는 동시에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아래로 아래로 떠밀려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흘러오르다,라는 말이 어디 있는가 고여 있거나 갇혀 있지 않는 한 쉴.. 더보기
12 월, 끝자락에 읽는 소월의 시, 몇 편.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김 소월 시 ‘왕십리’모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 소월 시 ‘진달래꽃' 모두 "가고 오지 못한다" 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을 나.. 더보기
11월에 꺼내 읽는,, 정 호승의 시 몇편. 물을 붓고 누룽지를 끓인다 돌아가신 어머니 냄새가 난다 김장김치 한보시기 꺼내놓는다 그리운 어머니의 눈빛이 강가의 잔물결처럼 식탁 위에 퍼진다 햇살과 구름을 한데 섞어 된장에 시금치 무치듯 무쳐놓는다 젊은 날 내 청춘의 봄비가 잠깐 울면서 앉았다 간다 평생 아껴두었던 내 심장을 꺼내 초고추장을 조금 발라 올려놓는다 내가 사랑했으나 나를 사랑하지 않은 배고픈 나의 천사여 밤새도록 나를 노려보는 창가의 붉은 새가 쪼아 먹기 전에 드세요 누룽지와 함께 내 심장을 맛있게 드세요 - 천사를 위한 식탁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 2017) 그래도 나는 골목길이 좋다 서울 종로 피맛골 같은 골목길보다 도시 변두리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블록담이 이어져 있는 산동네 의정부 수락산 밑 천상병 시인의 집이 있던 그런 골.. 더보기
가을에 읽는 윤동주의 시, 몇 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을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시 '길' 모두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