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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적당한‘ 거리.., 미술관 그림 앞에서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보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 밤 낮에 본 사선의 빛 그림자가 자꾸 떠올라 잠을 못 이루다가 잠을 못 이룬 것이 그 빛 그림자에 겹쳐진 누구 때문인 듯하여 가까운 약속을 미루었다 밖에 나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모두 다 사람 때문이겠지만 사람이 아니라 단지 과잉 때문이었다 나도 당신에게 과잉했었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되는 것이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게 된 요즘이라면 해가 뜨더라도 바깥에 나가 사람 그림자를 밝거나 사람의 그림자가 몸에 닿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 기분의 힘이라도 살아야겠다면 한없이 가벼워지라는 말을 들었다 자신을 만지라는 말이었다 - 이 병률 시 ‘적당한 속도, 서행‘모두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2020. - 대학원을 .. 더보기
망상 하나. 오랜 시간 아픔을 통해 나는 알게 됐다 아픔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이유다 바람이 우리들을 흔드는 이유다 아픔도 길이 된다 슬픔도 길이 된다 - 이 철환 시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 모두 * 모든 생명이 있는것은 잘 보이지 않으나 ‘성장’을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계절에 맞는 기온과 물과 바람, 햇살에 나름대로의 최선의 성장을 하는 것이다. 사람도 인생의 사계절이 존재한다. 살아 가면서 준비하고 노력하여 삶을 이루어내며 언젠가 올 끝맺음 에서 ‘보았기에 좋은 삶’을 희망한다. 모든 삶은 ‘흔적’을 남긴다는데,, 그 흔적도 ‘무 의미’ 하다는 실없는 생각. ”진짜 나이를 .. 더보기
국밥 한그룻,, 먹고서. 시장통 국밥집은 수증기 꽃이 핀다 아버지 사라진 날에도 국밥의 온도는 식지 않고 김이 자욱했다 솥단지는 노모가 지어놓은 방이다 오늘을 찬밥 위에 쏟아붓는다 솥단지로 스며든 나는 식어가는 체온으로 아버지를 기다린다 부었다 따르기를 따랐다 붓기를 노모의 국자는 솥단지 안에서 식어가던 돌아온 아버지를 걷어들이고 국밥의 체온을 식은 밥위로 쏟아붓는다 아버지가 다시 사라졌다 골목 입구와 골목 출구는 찬 밥에 뜨거운 국물로도 아버지를 배어들게 할 수 없었다 국밥의 온도가 식지 않고 수증기로 피어오르면 식어가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아직 식지 않은 나를 위해 부었다 따르기를 따랐다 붓기를 온몸의 색이 바랜 아버지의 옷은 도박으로 집을 팔고 가게를 저당잡혔다 시장통 국밥집에서 노모는 수증기를 휘휘 저어 거품을 걷어 내고.. 더보기
부모라는.., 이름으로 딛고 선 겨울 저수지의 얼어붙은 입이 발밑에서 쩍, 하고 갈라질 때 온몸이 내지르는 말이 엄마다 한낱 축생도 난생 벙어리도 오장육부 오므렸다 펼치면 한 호흡에 저절로 발성되는 말 ˙˙˙ 엄마 내 엄마의 엄마는 엄마가 일곱 살 되던 해 난산 끝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곰보라도 째보라도 좋으니 엄마라고 불러볼 엄마가 있어봤으면 좋겠다고 땅거미 내린 먼 목소리로 자주 자주 혼잣말하시던 엄마 달의 엄마 별의 엄마 나비 떼 엄마들 둘러앉아 분단장하는 화엄꽃밭이 거기 있는지 어금니에 단단히 머금는 것만으로도 소태 내린 입속이 무화과 속꽃 핀 듯 환해지는 ˙˙˙ 엄마 - 김 명리 시 ‘엄마’모두 [바람 불고 고요한],문학동네, 2022. * 요즘 부모노릇은 참 ‘힘 들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즈음, 새해들어 좋은 소식으.. 더보기
Melancholia.., 비상. 세월의 머언 길목을 돌아 한줄기 빛나는 등불을 밝힌 우리의 사랑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아직은 햇살도 떨리는 1월의 아침 뜨락의 풀뿌리는 찬바람에 숨을 죽이고 저 푸른 하늘엔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살아갈수록 사람이 그리웁고 사람이 그리울수록 더욱 외로워지는 우리네 겨울의 가슴,나처럼 가난한 자 냉수 한 사발로 목을 축이고 깨끗해진 두 눈으로 신앙 같은 무등이나 마주하지만 나보다 가난한 자는 오히려 이 아침 하느님을 만나 보겠구나. 오늘은 무등산 허리에 눈빛이 고와 춘설차 새 잎 돋는 소리로 귀가 시린 1월의 아침 우리의 기인 기다림은 끝나리라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땅도 풀리고 꽃잎 뜨는 강물도 새로이 흐르리라 우리의 풀잎은 풀잎끼리 서로 볼을 부비리라. 아아, 차고도 깨끗한 바람이 분다 무등산은 한.. 더보기
기형도 애송 시 3편 *2009년글에 업데이트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녘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 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 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며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 더보기
새해, 아침에 깨어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황동규 시 '작은 사랑의 노래' 모두 **투석을 하면서 근육통으로 진통제와 수면제를 처방 받았는데,, 3년을 넘게 약을 쓰다보니 ‘내성’이란게 생긴 모양이다. 근육통은 뜨거운 샤워와 젤마사지로 어느정도 견딜 수 있은 몸이 되었지만, 수면을 취하는 것은 약을 먹지 않으면 ’편히‘ 잠들지 못하고 밤 새 뒤척이다 날이 새고는 한다. 그동안 음식과 약을 나름대로 조절하며 ‘관조하는 위치’.. 더보기
기 형도 / 식목제(植木祭). 어느 날 불현 듯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를 가늠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 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 축축한 안개 속에서 어둠은 망가진 소리 하나하나 다듬으며 이 땅 위로 무수한 이파리를 길어올린다. 낯선 사람들, 괭이 소리 삽소리 단단히 묻어두고 떠난 벌판 어디쯤일까 내가 연기처럼 더듬더듬 피어올랐던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 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자리를 바꾸던 늙은 구름의 말을 배우며 나는 없어질 듯 없어질 듯 생(生)속에 섞여들었네 이따금 나만을 향해 다가오는 고통이 즐거웠지만 슬픔 또한 정말 경미한 것이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