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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기형도 애송 시 3편 *2009년글에 업데이트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녘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 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 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며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 더보기
새해, 아침에 깨어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황동규 시 '작은 사랑의 노래' 모두 **투석을 하면서 근육통으로 진통제와 수면제를 처방 받았는데,, 3년을 넘게 약을 쓰다보니 ‘내성’이란게 생긴 모양이다. 근육통은 뜨거운 샤워와 젤마사지로 어느정도 견딜 수 있은 몸이 되었지만, 수면을 취하는 것은 약을 먹지 않으면 ’편히‘ 잠들지 못하고 밤 새 뒤척이다 날이 새고는 한다. 그동안 음식과 약을 나름대로 조절하며 ‘관조하는 위치’.. 더보기
기 형도 / 식목제(植木祭). 어느 날 불현 듯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 물끄러미 팔을 뻗어 너를 가늠할 때 너는 어느 시간의 흙 속에 아득히 묻혀 있느냐 축축한 안개 속에서 어둠은 망가진 소리 하나하나 다듬으며 이 땅 위로 무수한 이파리를 길어올린다. 낯선 사람들, 괭이 소리 삽소리 단단히 묻어두고 떠난 벌판 어디쯤일까 내가 연기처럼 더듬더듬 피어올랐던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 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 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자리를 바꾸던 늙은 구름의 말을 배우며 나는 없어질 듯 없어질 듯 생(生)속에 섞여들었네 이따금 나만을 향해 다가오는 고통이 즐거웠지만 슬픔 또한 정말 경미한 것이었다... 더보기
’당신‘이 내 날씨.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이 개 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뫼 개까지 덩달아 짖어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좋은 그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칫거리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릿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 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어느새 개 짖는 .. 더보기
내 삶의 얼굴들.., 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신의 육체안에 있는 그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라. 내게 당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라, 그러면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리라.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비는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위로. 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 매 순간 세상은 당신을 초대하고 있다. - 메리 올리버 시 ‘기러기’모두 * 연륜을 더하며 ‘현명’해 진다는데,,, 그저 ‘어눌 해’지는 모양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Speed’의 시대에 살아 가는데 식사 한까, 커피 한잔을 마셔도 기계를 상대해야 한다. 몇번의 터치와 카드를 넣어야 결제.. 더보기
12월의 시 / 최지은 그해의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조금 춥고 적막한 나의 방 창턱에 뜨거운 물 한잔을 올려두고 앉아 간밤의 꿈을 돌이키고 있었습니다 겁먹은 눈으로 등을 맞댄 채 서로를 지키는 두마리의 원숭이가 잠든 내 머리맡에 앉아 있는 걸 내가 다 지켜보는 꿈이었습니다 내 마음 가장 못생긴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 집에서 부모를 잃고 연이어 오랜 사랑도 잃고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란 뭘까 떠난 부모의 마음을 더듬고 후회하고 아파하고 두려워하며 열세번의 보름달을 바라보고 그런 내가 미워 모든 것이 미치도록 미워지던 그로부터 같은 꿈이 계속되었습니다 오늘 밤 다시 한해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모든 일을 옛일인 양 되돌리며 나만의 원숭이를 부르고 가까이 앉히고 눈이 마주칠 것 같습니다 정다운 나의 원숭이 이제 내 손을 붙잡고 나를 다.. 더보기
김영원 시인의 詩 읽기. -끈 / 김영원 그렇게 수고하시던 여섯째 날 잠시 짬을 내신 하나님이 바둑의 신 알파고와 한 판 대국을 벌이셨다 반상의 우주에서 실수는 금물이다 어쩌다 자충수를 두고 발목을 잡힌 하나님 밑줄 치고, 복기하고 장고 끝에 그야말로 신의 한 수를 두었다 구사일생으로 꽁무니에 퇴로를 확보하고 끈을 하나 묶어놓은 것인데 질기고 영민하긴 괄약근만한 끈도 없다 기습적인 복병들이 허세인지 실세인지 재빨리 알아채고 때와 장소를 가려 절묘하게 열고 닫는다 생사를 책임지는 끈, 평생 써먹어야할 상책이다 우리 할머니, 어느 날 속곳에 핀 애기똥풀꽃 끈이 때를 안다는 뜻이다 - 의자가 많은 골목 / 김영원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한 의자는 있어도 한 번만 앉아본 의자는 없는 골목이다 불타는 파마머리로 정직한 거울을 감쪽같이 속여먹.. 더보기
22년, 끝자락에 읽는 고 명자 시인의 시, 봄볕을 두드리다 /고명자 춘삼월 달력처럼 담벼락에 붙어 팬지나 선인장을 파는 남자가 있다 손바닥만한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 놓으며 볕이 잘 드는 쪽으로 생을 옮겨보는 남자가 있다 흙 한 줌에 뿌리를 내리고 소꿉놀이 깊이 빠진 어설픈 중년 빳빳한 새 봄으로 거슬러 주기도 하면서 봄볕 만지작거리다 그냥 가도 뭐라 말하지 않는다 꽃 따위나 사랑을 하다가 햇살 등지고 앉아 깜박 졸던 사이였는지 모른다 유리창에는 매화를 뜯어 붙이고 모란 문양을 떠 가난을 땜질하면서 개다리소반에 김치찌개 한 냄비 소주 반 병 헐벗은 행복을 훌훌 떠먹다 난전의 꽃, 다행이다 그늘 한 뼘은 깔고 앉았다 등줄기 꼿꼿하던 꿈 몇 번의 내리막과 커브를 돌다 둥그러진 남자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는 듯 국방색 어깨를 담벼락에 척 걸쳐 놓고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