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골목으로
거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럼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순하기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 양
밤은 깊어 가는데,
할머니 등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겨울의 눈이 펑펑 쏳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 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빡 눈을 맞으며, 아기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
-천상병 시 '주막에서'모두
적당한 어둠과 적당한 추위,, 그리고 적당한 장소에 자리잡은 선술집, 언제부턴가 혼자 술을 마시면 일식집이나 Bar 를 피하고 동네의 귀퉁이나 아무 지하철 역에서 내려 적당히 허술한,, 그리고 전혀 낯설치 않은 친근한 따스함을 느낄수 있는 선술집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곳의 안주도 토속적이며 술도 막걸리에 소주,, 그리고 비싼 술 이래야 맥주가 고작이다. 주모도 적당한 내 또래의 나이거나 누이같은 푸근함이 묻어나는 연륜과 사연이 배어있는 얼굴... 때로 혼자서 술을 마시다가 괜히 슬퍼져 눈물이 한방울 흘르거나 취한척 헛소리를 해도 너그럽게 받아 넘기는 그 푸근함이 좋다. 이곳은 한적한 공간에 한적한 풍경,, 때로 허술한 차림의 사내들이 오거나 홀로 들어와 한잔 술을 청하며, 소주나 막걸리를 글라스나 탁배기에 가득 담아 목젓을 꿀꺽이며 단숨에 마시고는 주모가 기본으로 내어놓은 김치를 한쪽 젓가락으로 집거나, 손가락으로 집어올려 입안에 쏙 집어 넣고는 "우적우적" 씹으며 문을 나서는 하루 하루 힘겨운 모습도 바라본다.
한쪽의 귀퉁이의 둥그런 연탄 화덕의 탁자에 앉아 소주 한병에 꼬막 한접시, 때로는 돼지고기 두루치기에 두부를 곁들여 막거리한 주전자 마신다. 오고가는 거친 사내들의 행색도 뿌옇게 내 뿜어대는 담배 연기도 이때는 정겹다. 학생시절... 그리도 가깝던 주점을 까맣게 잊고 살아온 듯 싶다. 한잔, 두잔,,,, 주량을 정하고 마시는 술은, 적당한 취기를 가져오며 기분이 좋게 온기가 올라온다. 작은 '선술집'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모두들 커지고 대형화 되면서 혼자 가는 손님은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어스름이 짙어지는 시간이면 뜨거운 오뎅 국물이나 김이 모락모락나는 우동에 소주 한잔도 좋으리라. 뿌옇게 흐린하늘에 눈은 내리지 않고 가만히 옷깃을 바람만이 흔들고 간다. 17; 57분... 조금 더 어둠이 깃들면 연탄불에 구운 돼지곱창에 곁들여 술 한잔 해야 겠다. 오늘은 집에 마눌님도 아이들도 없으니,,, '자유인' 이로다 !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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