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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아버지의 빛바랜 영정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며....





청년은 기다림을 굽고 있는 것이다
나무를 쪼개 추운 드럼통에 불을 지피며
청년이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는 것은
기다림이 익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외투 깃을 올리고 종종걸음 치는 밤거리에서
뜨겁게 달구어진 조약돌에 고구마를 올려놓고
청년이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기다림이 첫눈처럼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청년은 지금 불 위의 고구마처럼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온몸이 딱딱하고 시꺼멓게 타들어가면서도
기다림만은 노랗고 따근따근하게 구워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구워진다는 것은 따근따근 해 진다는 것이다
따근따근해 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맛있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 맛있어 본 적이 없었던 청년이
다 익은 군고구마를 꺼내 젓가락으로 쿡 한번 찔러보는 것은
사랑에서 기다림이 얼마나 성실하게 잘 익었는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정호승 시 '군고구마를 굽는 청년'모두








평양에서 오래전에 홀로 내려오셨던 아버지는 평생을 북한에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형제들을 그리워하며 사시다 돌아 가셨다. 예전의 KBS 이산가족 방송에도 나가시고, 이후로 북한가족방문단에 신청을 하시어 말년에 돈이 조금 생기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속옷과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형제들의 작은 선물을 사두어 '작은 보따리'를 꾸려 두시고 자신의 순서가 오시기만을 기다리다가 '심근경색으로 인한 풍'으로 병원에서 일년, 익산의 작은 매형의 집에서 1년의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임실에 있는 호국원에 6, 25 참전용사의 자격으로 묻히셨다. 6, 25 당시에도 소위로 근무하시며 북한의 형제들 소식을 틈틈히 살피셨다는데,, 평양에서 '금은방'을 하셨다는 할아버지는 '모진일'을 당하셨다는 소문에 항상 애타 하셨다. 

살아 생전에 이제는 100세를 넘기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제사 문제로 고민 하셨는데,, 천주교를 믿으셨던 아버지, 어머니는 그저 생신이 다가오면 따스한 밥과 국을 한상 따로 차려 놓으시곤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면서 할아버지가 아직도 호주로 살아있음에 그 신고를 망설였지만,,, 아버지의 생전의 뜻대로 아직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해마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며 이틀 후에 다가오는 아버지의 제사를 생각한다. 본인도 아버님의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제사상을 받는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언젠가 마음을 정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신고를 하여 호적을 정리하고 제사도 제대로 차려 드려야 하는데,,, 마음의 결정이 필요하다.

언젠가 딸 둘을 둔 나에게 "아들을 하나 낳아야지" 하셨는데,, 젊은 시절엔 기독교식으로 간단하게 '추도식'으로 하리라 생각 했었는데,, 이제는 내 이후의 제사는 어떻하나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 몇년 사이에 정리하고 준비 하여야 할 일들이 몇가지 더 남아 있음을 본다.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아프고, 죽음을 맞는,,, 그 모든일이 물과 같이 자연스럽게 흐르기를,, 마음에 맺힘이 없기를 나는 바라고 원한다.' 한달에 두어번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진료를 하며 관리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 보다는 주위의 '죽음의 모습' 을 자주 접하면서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아직 젊은 나이에 '웃기는 소리' 일지도 모르나,,,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존엄'으로 내 의사대로 가고 싶은게 소망이다. 

 
올해는 차례를 제법 '정성껏' 드렸다는 생각이다. 해마다 명절이나 제사가 다가오면 '마눌님'의 기분에 따라서 힘겹고 피곤하게 느껴 졌는데,, 미리 '기름칠'을 정성껏 한 덕일까?!... ㅎㅎㅎ,,, 나이가 들면 너나 없이 마눌님의 눈치가 제일 무섭다더니,, 내가 그 꼴이다. 차례를 지내고 어머님과 동생도 떠나 보내고 마눌님과 아이들도 찜질방에 보내고 점심 설것이 서비스를 하고, 샤워를 마치니 몸이 개운하다. 커피를 진하게 타서 한잔 마시니,,, 차분히 마음이 가라앉으며 기분좋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나이가 제법드니 일년의 시작이 무엇보다 중요 하다고 느낀다. 팔을 "쭈~~우~ 욱~" 뻗으니 기분좋은 피로감에 눕고만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