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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달고 씁쓰레한 차한잔 마시고 싶을 때,

아버지께서 즐겨 드시던 맆툰홍차.








당신은 홍차에 레몬 한 조각을 넣고
나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쌉싸름한 맛을 좋아했지
단순히 그 차이뿐
늦은 삼월생인 봄의 언저리에서 꽃들이
작년의 날짜들을 계산하고 있을 때
당시은 이제 막 봄눈을 뜬 겨울잠쥐에 대해 말했고
나는 인도에서 겨울을 나는 흰 꼬리딱새를 이야기했지
인도에서는 새들이 흰 디어로 지저귄다고
쿠시 쿠시 쿠시 하고
아무도 모르는 신비의 시간 같은 것은 없었지
다만, 늦눈에 움마다 뺨이 언 꽃나무 아래서
뜨거운 홍차를 마시며 당신은
둘이서 바닷가로 산책을 갔는데 갑자기
번개가 쳤던 날
우리 이마를 따라다니던 비를 이야기하고
나는 까비 쿠시 까비 감이라는 인도 영화에 대해 말했지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슬프고
망각의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이
언젠가 우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새들이 날개로 하루를 성스럽게 하는 시간
다르질링 홍차를 마시며
당신이 내게 슬픔을 이야기하고
내가 그 슬픔을 듣기도 했다는 것
어느 생애선가 한 번은 그랬었다는 것을
내가 좋아했다는 것을
흉터가 있다는 것은
상처를 견뎌 냈다는 것
노랑지빠귀 우는 아침, 당신은 잠든 척하며
내가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지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가 아주 잠들어 버리겠지
그저 당신의 찻잔에 남은 레몬 한 조각과
내 빈 찻잔에 떨어지는 꽃잎 하나
단순히 그 차이뿐
그리고는 이내 우리의 찻잔에서 나비가 날아올라
꽃나무들 속으로 들어가겠지
날짜 계산을 잘못해 늦게 온
봄을 따끔하게 혼내는 찔레나무와
늦은 삼월생의 봄눈 속으로


- 류 시화 시 '홍차' 모두

*쿠시-행복, **까비 쿠시 까비 감-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슬프고





* 홍차는 조금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때에 음미해야 제맛이다. 어제는 문득 홍차 한잔이 생각나서 식품 파는 곳을 기웃대며 '맆툰홍차'를 찾았지만,, 물건이 안 나온 지가 제법 됐다는 상인들의 이야기다. 아버님 생전에 즐겨 드시던 맆툰홍차, 그 향기가 그리워 때때로 찾아 나서지만,, 이제는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매장에서 이것저것 갖춰서 찻잎을 우려내 마시기에는 번거로움이 많으니,, 내 기호에 맞는 커피라도 원하는 때에 뜨겁게 즐길 수 있으니,, 그것으로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가끔, 슬럼프에 빠지거나, 스스로에게 어떤 문제점을 느끼기 시작할 때에,,, 초심(初心)이 중요하다. 사람의 하루, 하루의 삶에서 결국엔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슬프고.... 그냥, 사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내 삶에 순정(純情)을 유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