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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놀다 돌아와 퍼렇게 언 손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뒤뜰 겨울나무 그늘이 그새 자라 좍좍 탄력 있는 껌 씹는 소리를 내요 몸 없는 정령들 버젓이 어깨죽지에 붙어 있고 북방의 자작나무가 귀를 파먹으며 물기 거두어 간 바람 소리를 퉁겨냅니다 시를 쓰려는 시간은 흙 속에 파묻힌 묵음들도 날카로운 비명으로 지납니다 시를 그만둬야 할까요 고수레 고수레 굿을 올려야 할까요
(어쩌면 고흐는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시를 썼는지 몰라요 시를 쓰느라 그렇게 귀가 가려웠던 것 동네북 같은 세상에 진저리가 난 거지요) 귀를 막을지 눈을 감을지 더 높은 소리를 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쓰지 않고도 잠들 수 없는......
발굴할 수 없는 슬픔들을
별수 없이 또 궁리합니다
회칠 벗겨진 하늘이 우툴두툴 비를 데려오는 소리
가려진 골목 돌림노래처럼 끝없이
죽은 이름을 호명하는 까마귀
팟! 암전
쉬, 지금이에요
나를 입은 사시나무가 홀린 듯 타자기를 두드려요
- 김 안녕 시’행복한 사람은 시를 쓰지 않는다’모두
시집[사랑의 근력], 걷는 사람, 2021.
*은희경의 소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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