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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 쓸쓸한 영혼

5월의 햇살 같은 시/김 영랑 시 .

눈이,, 부시게..,




오월 /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김 영랑 /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5>



김 영랑 / 내 마음을 아실 이



내마음을 아실 이
내혼자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것이면

내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밤 고히맺는 이슬같은 보람을
보낸듯 감추었다 내여드리지

아! 그립다
내혼자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혼자 마음은


<1931년,시문학>



김 영랑 / 독(毒)을 차고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 않아 너 나마저 가 버리면
수억 천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자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영랑시선], 시문학사, 1949.



김 영랑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럴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 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 영랑 / 북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자진머리 휘몰아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어사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덕터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요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지.

<영랑시선>(1949)


김 영랑 /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김 영랑 / 내 마음 아실 이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김 영랑/ 물보면 흐르고


물보면 흐르고
별보면 또렷한
마음이 어이면
늙으뇨.

흰날에 한숨만
끝없이 떠돌던
시절이 가엽고
멀어라.

안 쓰런 눈물에 안겨
흩은 잎 쌓인 곳에
빗방울 듣듯
느낌은 후줄근이
흘러 흘러가건만

그 밤을 홀히 앉으면
무심코 야윈 볼도
만져 보느니
시들고 못 피인 꽃
어서 떨어지거라.



* 복학을 하기 전 빈 시간에 배낭을 하나 메고 전라남도 강진에 들른적이 있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을 지나 이미 다 져버린 동백꽃은 보지도 못하고 강진읍에 있던 영랑의 생가만 보고 올라왔다. 그때는 아직은 젊어서 였을까 그 먼거리를 고속버스를 몇번이나 갈아 타고도 힘이 든지도 몰랐는데

”남으로 남으로 내려 가자 그곳
모란이 활짝 핀곳에 영랑이 숨쉬고 있네
남으로 남으로 내려 가자 그곳
백제의 향기 서린곳 영랑이 살았던 강진
음악이 흐르는 그의 글에 아 내 마음 담고 싶어라
높푸른 하늘이 있는 그곳
아 영원히 남으리 영랑과 강진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것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다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사랑이 넘치는 그의 글에
아 내 마음 담고 싶어라
애달픈 곡조가 흐르는 곳
아 영원히 남으리 영랑과 강진“

- ‘영랑과 강진’ 박 미희, 정 권수 부름. MBC 3회 대학가요제 수상곡 이 노래를 수 없이 흥얼 거리며 귀향했던 기억이,, 영랑의 시를 옮겨 적으며 문득 떠 올라 잊기전에 적어 본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