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그 쓸쓸한 영혼 썸네일형 리스트형 2024 노벨문학상 수상 / 한 강 작가. * 출처: 서울신문 캡쳐 화면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서울의 겨울 12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 더보기 ‘무관의 제왕’ 그 자유로움 까지, - 김 관식 시. 해 뜨면 굴 속에서 기어나와 노닐고, 매양, 너물국 한 보시기 싸래기밥 두어 술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다. 남루를 벗어 바위에 빨아 널고 발가벗은 채 쪼그리고 앉아서 등솔기에 햇살을 쪼이다. 해 지면 굴 안으로 기어들어 쉬나니. - 김 관식 시 ’옹손지(饔飱志)‘ * 옹손지(: 아침 옹, 1: 저녁밥 손, : 뜻 지)- 한마디로 옹손지는 아 침, 저녁의 끼니 이야기이다. ** 이 시 에는 무력감에 쌓인 시인의 자신에 대한 비에가 서려있다. 60 년대 후반에 이르면 김관식은 무력한 생활로 일상을 보낸다. 특히 이 시가 발표되었던 68년경에 이르면 무허가 집장사에 도 실패하여 생계의 수단을 잃고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시인 은 시적주체에 자신을 투영시키고 있다. 아침밥과 저녁밥이 라는 단조로운 제목이 의미.. 더보기 세상의 모든 ‘작은 꽃’들과 더블어 - 나 태주 시인. 풀꽃·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 나 태주 시 ‘풀꽃 1.2.3’ 아직도 남아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이루게 하여 주소서 아직도 만나야 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아멘이라고 말할 때 네 얼굴이 떠올랐다 퍼뜩 놀라 그만 나는 눈을 뜨고 말았다. - 나 태주 시 ‘화살기도‘ * (지혜, 2015) 멀리서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좋아 가끔 목소리 듣기만 해도 좋아 그치만 아이야 너무 가까이 오려고 애쓰지 말아라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고 하늘까지 높은 날 봄날이라도 눈물 글썽이는 저녁 무렵 나는 여기 .. 더보기 먹고 일하고, 마시고 자는 일상의 생활 - 김 경미 시. 1 누군가 '사하라 작약' 얘기를 했다 19세기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이름을 딴 '사라 베르나르 작약' 우리나라 화훼 수입상이 '사하라 작약'으로 바꿨다 마음대로 줄이거나 늘린 말들이 모여 사하라가 되고 사라 사하라 베르베르 베르나드가 되고 버나드 사라가 되고 사라 작약이 되고 사하라 버나드 사라 카라 3세가 되어 '사라 베르나르 작약'을 퍼뜨리거나 '사라 베르나르 작약'을 바꾸거나 떨어뜨리거나 멀어지는 법 말이 없이는 '사라 베르나르 작약'도 애초에 없었다 2 '벨 에포크'를 연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살아 있을 때 늘 관(棺)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사막이 되고 작약이 되고 사라가 된 말들이 모여 관(棺)을 짜는 법 매일매일 살아서 거기로 들어가는 아름다움 없이는 어떤 삶도 살아남지 못하는 것.. 더보기 마음속 그 ‘오묘’한 사랑법, - 고 정희 시.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기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 - 고 정희 시 ’ 사랑법 첫째‘ 詩를 쓰듯 설렁대는 말들을 일격에 눕히고 성나는 말과 말 사이를 잘라냅니다. 詩를 쓰듯 보다 많은 생략법과 저녁 어스름 같은 침묵의 공간 안에 한 생애의 여유를 풀어 버리고 두 귀를 쭈뼛히 세워 동서남북으로 뻗은 가지를 자릅니다. 동서남북으로 뻗은 화냥기를 자르고 자르며 돋아나는 아픔까지 잘라냅니다.. 더보기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것 - 박 정대 시. 쉽게 쓰여진 시는 없다 아우슈비츠가 사라졌어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모두 다 제 속에 거대한 감옥을 세우고 사느니 서정이 사라진 시대에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너무나 어 렵다 지성이 감성을 데불고 어디로 가느냐 묻지 마라, 지성도 감성도 명왕성도 사라진 시대에 또 다른 행성에서는 샘물 같은 지성이 솟고 불꽃같은 감성이 피어나느니 그대 눈에는 그대 가슴팍에는 그저 쉽게 쓰여진 시만 펄럭이며 나부끼고 있구나 인류여, 나의 이름을 묻지 마라 나는 그대에게 다가간 적 없고 그대 입술에 사랑을 고백한 적 없나니 적이 없어서 사랑을 사랑할 수 없는 나에게 사랑이라 불리는 그대여 더 이상 인간의 사랑을 발설하지 말아 다오 고독에 메마른 나무들과 손잡고 걸어가는 오후의 거리 에서 나는 나의 고독과도 여전히 화해하지.. 더보기 가난의 눈물을 먹고 핀 꽃 - 함 민복 시 윗물을 맑은데 아랫물이 맑지 않다니 이건 아니지 이건 절대 아니라고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하며 마구 흔들어 마시는 서민의 술 막걸리 - 함 민복 시 ‘막걸리‘ [검은 시의 목록], 걷는 사람, 2017. 임산부와 함께 앉게 되었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동행하게 되었네 아이와의 인연으로 내 인생이 길어지자 나는 무상으로 어려지네 버스가 조금만 덜컹거려도 미안한 마음 일고 따갑게 창문 통과하는 햇살 밉다가 길가에 핀 환한 코스모스 고마워지네 아이가 나보다 선한 나를 내 맘에 낳아 주네 나는 염치도 없이 순산이라네 - 함 민복 시 ‘버스에서 ’ * 시와 함께, 창간호, 2019 ―추석 지난 일 생각 좀 해보라고 덜컹덜컹 온몸 흔들어주누나 비포장도로, 흙먼지 날리며 고향에 갔었나니 아버지 묘보다 잔.. 더보기 김 응교 시와 번역 시, 와세다대학 입구 헌책방에서 영어 원서를 품고 책을 찾고 있는 여학생 시원스레 파인 흰 가슴살 마른 할아버지가 느물느물 훔쳐보는 간음姦淫 광장에서 무언가 연극 대사를 종일 외우고 있는 아이, 먼 데 바라보며 쉰 우유를 마시는 지저분한 수염은 과거의 부스러기들 잔뜩 묻히고, 누가 정상인지 나는 구별하지 못한다 사쿠라는 죽음을 숭앙한다 일주일 전 국회의원 아라이가 자살했고 어제는 X-Japan의 과격한 기타리스트 히데가 자살했다 내일은 아쿠다가와상을 받은 누군가 동맥을에 칼을 댈까 이 섬나라는 죽음을 이어달리기한다 침묵하는 죽음의 낌새 재잘대는 살림의 낌새 병실 냄새 한 움큼, 이 도시는 생선이 모로 누워 잠든 어물전 살아 있는 죽은 사시미 떼를 찾아 상복喪服 입은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제국의 도시들아, 안.. 더보기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