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녘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 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 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며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녘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기형도시 '정거장에서의 충고'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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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먼지를 털어낸다. 장마기간이라는데 햇살은 눈부시게 찬란하고, 따스하여 이제는 푸른물에 몸을 담그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푸르른 바다를 그려 본다. 한때는 한권, 한권 사모으던 책들이 이제는 색이 바래어 누렇게,, 지금은 읽지도 않는 세로판의 글줄들,,, 한번 속아내어 책들도 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대학시절 남들이 읽었다는 말에 사놓고 두고두고 돈이 아까웠던 '데카메론'이나 '짜라트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무슨 허영에서 이책을 집어 들었던 것일까???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같은 책은 재미있게 읽던 책인데,,, 친구 녀석의 책을 빌려온 것인데 25년이 넘게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과외도 금지 되여 먹고 살길이 막막하여 하나,둘씩 휴학을 하거나 군대를 가던 시절,,, 한 친구는 자취방에 천원짜리로 3만원을 숨겨놓고 하루에 천원씩 쓰며 힘겹게 하루를 이어갔고, 번역에 막노동에 돈이 되는 일이라면 하루에도 몇탕씩 알바이트를 하던 젊음,,, 한쪽에서는 학우가 쓰러져가고,,, 한쪽에서는 졸업하기만을 기다리는 가족들과 앞날의 기대에 어린 주위의 시선에,,, '미래를 위해 싸우자'는 친구들과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갈등하던,,, 우리는 '젊기만' 했다.
-얼마전 외국으로 친한 벗을 떠나보내고 길위에 서서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의 시절'은 흘러 가는구나 40대를 보내고, 멀지않은 50대를 바라보며 체념을 배워야하는 것일까? 내 젊음은 이렇듯 흘러 갔구나,,, 이제와는 다른 시선과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리라.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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