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붉은수염

슬퍼도, 봄

오고 가는 이 없어도, 봄은 온다.




나는 나를 늘 싸게 팔았다
아예 마이너스로 치부해 버렸다
내세울 게 없는 집안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에 육십년이나 절었다
그래서 나의 액면가는 낮을 수밖에 없고
때로 누가 나에게 제 값을 쳐주면
정색을 하며 다시 깎아내리곤 했다
자신의 액면가를 곧잘 높여 부르는 이들도 있는데
겉으로는 끄덕끄덕하면서도
속으로는 씁쓸하다
그들의 액면가는
부르는 만큼 상종가를 치기도 하는데
나는 늘 나의 값을 바닥에서 치르며
흘끔흘끔 앞뒤를 곁눈질 한다
깎이고 깎인 액면가가 내가 되었다
이제라도 제값을 받아보자고
큰소리 한번 치고 싶은데
유통기한이 끝나간다
무릎이 저리다


- 윤 준경 시 ‘ 액면 가’ 모두
*슬퍼도, 봄 (시선사, 2021)



* ‘액면 가’.... 말 그대로 어떤 사물에 유형, 무형의 가치로 계산을 하여 표면적으로 ‘정해 놓은 가격’을 말함입니다. 치기어린 시절에 피부로 느꼈던 ‘세상은 불평등 해’ 하는 감정들,, 이십대를 넘어서 부터 항상 스스로 되묻곤 하던 어떤 ‘가치’에 대한, 부조리한 삶에 대한 애증이라 할까요?!....

구직자에서 ‘구인’을 하는 반대의 입장이 되어보니 시인의 말처럼 “자신의 액면가를 곧잘 높여 부르는 이” 들의 모습에서 씁쓸하고 냉정하게 ‘커트라인’을 정해 두는게 삶이라 느낍니다. 사회에서 일을 통하여 얼마나 ‘가치있는 일’을 하고있나 하는 정확한 잣대는 연봉으로 정해집니다. 하지만, 자신의 현 위치에 따라 만족하다면 그것이 최적의 연봉이겠지요.

"슬퍼도, 봄"은 오는 게 순리이지요. 액면가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액면을 무엇으로 채웠느냐의 문제겠지요. 액면가가 아무리 높아도 액면이 가짜면 결국 신기루처럼 무너져 내리는 법이니, 유통기한이 무슨 대수 이겠습니까?!....



봄꽃처럼, 환하게 피워내는 ‘화이팅!’을 기원합니다.






'붉은수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이 간 그릇.  (0) 2021.06.17
빈 자리...  (0) 2021.04.16
모란이 필 때 까지...  (0) 2021.02.28
겨울, 메마른 길 위에서,,  (0) 2021.01.05
잠 못 이루는 이 밤에,  (0) 20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