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혼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인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도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 나의 시는.
- 김 현승 시 ‘절대고독’모두
* 시집 [가을의 기도] 중에서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 김현승 시 ‘아버지의 마음’ 모두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달려 내게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열매를 위하여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김 현승 시 ‘가을의 기도’ 모두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모든 신(神)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결정(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堅固)한 칼날 - 발 딛지 않는
피와 살.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懷柔)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 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쌉쓸한 자양(滋養)
에 스며드는
에 스며드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 김 현승 시‘견고한 고독’모두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홈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 김 현승 시 ‘눈물‘ 모두
* [김현승 시초](1957년)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 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 김 현승 시‘ 플라타너스’모두
내 아침상 위에
빵이 한 덩이,
물 한 잔.
가난으로도
나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신 주여.
겨울의 마른 잎새
한끝을,
당신의 가지 위에 남겨두신
주여.
주여,
이 맑은 아침
내 마른 떡 위에 손을 얹으시는
고요한 햇살이시여.
- 김 현승 시‘아침식사‘모두
슬픔은 나를
어리게 한다.
슬픔은
죄를 모른다,
사랑하는 시간보다도 오히려.
슬픔은 내가
나를 안는다,
아무도 개입할 수 없다.
슬픔은 나를
목욕시켜준다,
나를 다시 한 번 깨끗게 하여준다.
슬픈 눈에는
그 영혼이 비추인다.
고요한 밤에는
먼 나라의 말소리도 들리듯이.
슬픔 안에 있으면
나는 바르다!
신앙이 무엇인가 나는 아직 모르지만,
슬픔이 오고 나면
풀밭과 같이 부푸는
어딘가 나의 영혼......
- 김현승 시 ‘슬픔’모두
인생을 말하라면 모래위에
손가락으로 부귀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팔을 들어
한조각 저 구름 뜬 흰 구름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눈을 감고
장미 아름다운 가시 끝에
입 맞추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입을 다물고
꽃밭에 꽃송이처럼 웃고만 있는
사람도 있기는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고개를 수그리고
뺨에 고인 주먹으로 온 세상의 시름을
호올로 다스리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나와 내 입은
두 손을 내밀어 보인다,
하루의 땀을 쥔 나의 손을
이처럼 뜨겁게 펴서 보인다.
이렇게 거칠고 이렇게 씻겼지만
아직도 질기고 아직도 깨끗한 이 손을
물어 마지않는 너에게 펴서 보인다.
- 김 현승 시‘인생을 말 하라면‘모두
* [마지막 地上에서], 創作과批評社,1984.
** 본래 부모님은 모두 천주교인 이셨다. ‘베드로’와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을 가지셨는데, 머리가 깨고나서 생각해 보니 부모님 한테서 ‘종교’에 대한 권유를 받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교육철학은 철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였는데, 그 존중이 때로는 ‘무 관심’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때도 있어서,, 삶이란게 외롭고 씁쓸한 선택이란 것을 학생때에 깨닳게끔 되었다.
중학교시절 어이없게도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준다고 해서 ‘교회’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식사를 나누고, 전도하며 고2 까지, ‘하느님의 존재’와 ‘예수는 누구일까?’ 하는 화두를 대학시절까지 힘껏 고민했고,, 군대를 제대하며 스스로 기독교를 떠났다. 내 주위에 많은 선배나 후배들이 목사나 전도사가 되었지만,, 나는 ‘그 들’을 믿지 않는다.
종교를 불문하고 ‘잘 믿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김 현승 시인의 시를 다시 읽으며 ‘중학교 시절’ 배고프고 외로워, 찾았던 교회에서 막연히 따스하고 환하던 그 체온을 기억한다. 종교를 믿으면서 느끼던 위선이나 가면들 스스로 믿음이 없으면서 강요하는,, 스스로 예수를 팔면서 ‘베드로’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긴 싫었다. 믿고, 의지 한다는 것은 대단한 신앙이다. 김 현승 시인의 시를 골라 적으면서 시인의 기도와 염원, 그리고 인간으로서 느꼈던 ‘고독’을 동감하며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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