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비는 잠시 아름다웠다
위에서 보는 우산들은 평화로이 떠가는 잠깐의 행성이 된다
곧 어마어마한 욕설이 들려오고 뭔가 또 깨고 부수는 소리
옆집 아저씨는 일주일에 몇 번 미치는 것 같다
한여름에도 창문을 꼭꼭 닫을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나는 오늘 한마디도 안 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면서 아아 했지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는 말이 아니니까
홑이불처럼 잠시 사각거리다가 나는 치워질 것이다
직업도 친구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훌륭하다는 생각도 했다
작은 배드민턴 라켓 모양의 전자파로 모기를 죽였다
더 죽일 게 없나 찾아보았다
호흡을 멈추면서 언제까지나 숨 쉴 수 있다는 듯이
자정 무렵 택배 기사가 책을 갖고 왔다
그것이 땀인 줄 알면서 아직 비가 오냐고 물어봤다
내륙에는 돌풍이 불어야 했다
굳이 이 밤에 누군가가 달려야 할 때
너를 이용하여 가만히 편리해도 되는지
내 모든 의욕들을 깨뜨리고 싶다
* [표류하는 흑발] 민음사. 2017. 09.22
- 비가 내리면 빗소리에 소음이 일시에 가라앉는다. 일제히 잠기는 침묵에 신기해져 그 순간을 즐기지만,, 줄곳 내리는 비나, 이곳저곳에 쏳아 붓듯이 내려 눈물을 자아내는 폭우는 사양하고 싶다. 젊은 시절 비를 흠뻑 맞으며 뛰어다닌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환경오염으로 그런 ‘낭만적‘인 감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안개비가 훗 뿌리는 날이 오면 문득 우산을 접고 비에 젖고 싶다. 머리숱도 없는데 코미디 일까..,!?
덧붙여)
책상과 나무 사이에서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웃고 있다
한 삽만 더 파면 찾는다고
소년은 내게 인내를 요구했다
버려진 개의 부서진 마음으로
정원의 흙더미 열고 올라온 손가락
누군가 재능 없어도 인생에 실패하면 시를 쓰게 된다고 했다
지난번에 만든 작품 냄새가 났다
잘 닦지 않은 프라이팬처럼
어제는 한숨도 못 잤어
오늘은 자자
눈을 기다린다
이유는
맴돌 뿐
찾지 못했다
소멸 직전의 얼음의 의미
허물없는 친구의 무례
손바닥을 바닥에서 꺼낸다
머리끈을 끼워 둘 수 있게
보잘것없이 사라진다
가까워지고 싶은 이들이 있었으나
손을 맞잡고 한 걸음도 안 갔다
흠집 없는 고통을 향해
- 김 이듬 시 ‘ 하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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