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대통령 일 잡지와 특별인터뷰
이번 6자회담이 94년 제1차 핵위기때의 미.북한간 ‘틀합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수는 없지만, 앞으로 (금년안에 세계 여타지역에서, 미국이 꼭 간여해야될) 중대사건이 돌발하지 않는 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는게 상식적이다.
‘틀합의’란 하나의 시일지연책이었음이 판명됐었기 때문. 김영삼 전대통령은 94년 초여름 미국의 북한공격을 단호히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는데, 이번 일본잡지 <정론(正論)3월호>과 가진 특별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좀더 자세하게 언급해 내외서 주목되었다. 산께이신문 기다(喜田 由浩)특집부차장이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94년 위기’나 김일성.정일 부자의 인상, 북한에의 대처에 관하여 일문일답한 내용을 소개한다.
(경칭 략. 답변분 전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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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 “미군인만으로 한다…한국땅을 빌려서”
김영삼 – “전쟁할수 없다”…핫라인으로 20회통화
– 94년위기때 미국은 항공모함등을 한반도 해역에 파견해 임전태세를 굳히고 있었다. 실제로 전쟁위기가 닥치고 있었는가.
金 그렇다. 그때 클린턴대통령은 정말 전쟁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북한까지 이틀쯤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미해군 함선 33척을 배치했다. 북한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 태세를 완전히 갖춰가고 있었다.
미국은 “필요하다면 더 해군을 보낸다. 항모(항공모함)도 더 보낸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나는 클린턴대통령에게 전화로 “ (전쟁은) 절대로 할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일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38도선의 휴전선부근에는 북한의 한국을 향하고있는 포(대포)가 많이 있다. 지하에서 밀어 올리는데 4분밖에 안걸린다. 곧 (한국을) 공격할 수가 있다. 물론 (미군이) 그것을 모두 공격으로 파괴할 수가 있다면 괜찮겠지만 그중 몇발이라도 서울에 날아온다면… 큰일이다. 몇10만명이라는 피해가 날것임에 틀림 없다.
– 전화회담에서는 긴박한 주고받기가 계속된 모양이지요.
金 나는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한명의 군인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클린턴대통령)은 “ 미국군인만으로 한다. 한국의 땅을 빌려서 한다.”고 말하더라. 나는 “그건 할수없다”고 맹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클린턴대통령도 꺾이지않더라. “ 이것을 하지않으면 안된다.”고 강경했다. 전화에 의한 회담은 20회는 이어졌을 까. 도청될 우려가 있다하여 미국 백악관에서 일부러 공사하려 와서 특별전화(핫라인)를 청와대에 설치했다. 미국과 한국은 밤낮이 역전돼있지만 (극히 중요한 문제이므로) 우리는 그때 “ 어느 쪽이 전화를 걸어도, 몇시라도 꼭 받는다”라는 약속을 나눴다. 전화는 쌍방의 통역을 제외하고는 둘만이 하였다.
– 김영삼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친한 사이였다고 듣고 있다. 그런 관계였어도 클린턴대통령의 기분은 바뀌지않았군요.
金 한국측의 피해가 큰데 대해 설명했지만, 명확한 회답은 없었다. 그사람(클린턴대통령)은 “ 어떻게든 한다”고 해요. (미국은) 분명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루나, 이틀, 수일간이나, 여하튼 짧은 기간에 결말을 낼 자신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함대를 끌어오기란 대단하지. 오끼나와에도 직접, 북한을 공격할수 있는 군함이 와있었다.
– 한편 북한쪽은 어땠는지. 정말로 전쟁을 할 참이었던가요.
金 그사람들(북한)은 언제나 큰소리하지만 미국과는 전쟁을 할수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겁난 것이다. 그것이 속내다. 김일성은 (항일전에서) 만주까지 도망간 경험이 있고 실제로 전쟁의 무서움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터 전대통령의 방북을 이용해서 잘 전쟁을 회피한 것이다. 그때 카터 전대통령이 김일성에 대해 “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김영삼대통령을 만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더니 곧 회담을 수긍했다. 그런데도 회담의 2주일전에 김일성은 죽어버린 것이다.
– 남북정상회담은 김일성수석의 급사로 인해 중지됐다. 만약, 그때 정상회담이 실현됐더라면 쌍방부터 대담한 제안이 있었을 것이다 라는 견해가 있다.
김일성에게 “감군(減軍)
제안 예정”
金 김일성은 그때 정말 어려운 입장에 있었으니 여러 가지 얘기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후에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씨(전 조선노동당서기)에게서 들은 바로는 당시 김일성은 매일 서기회의를 소집해 정상회담대책을 짜고있었다는 거요. 그만큼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었겠지. 회담이 실현되었더라면 나는 남북 양군의 병력삭감을 제안할 참이었다. 쌍방에서 감시하며 서서히 줄여가는 방식이다. 원래 북한은 굶어있는데다 110만이나 되는 거대한 병력을 유지해가는게 큰일이므로, 이 제안을 김일성은 받아들였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됐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됐더라면 그후의 한반도역사도 변해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긴가.
金 아주 많이 변해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김일성이 급사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실은 당시 “김일성의 병상(병의 상태)이 좋지않다”라는 정보가 있었다. 카터 전대통령에게도 그 일을 물었는데 “ (평양의) 대동강에 배를 띄우며 한시간반쯤 (김일성과) 얘기했는데 건강상태는 좋았다”라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나빴더군.
– 김일성주석의 사후 북한정권은 장남 김정일총서기가 잡았다. 대통령재임중(93~98) 양측의 시대를 경험한 셈인데 김부자의 정치수법이나 인간성의 차이에 관해 어떻게 보아왔는지요.
김정일 ‘정치가’로서는 제로
金 김정일은 자국민이 (기아등으로) 몇백만명이 죽고있는데도 전혀 신경을 쓰지않는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않는다. 정치가로서, 국가지도자로서는 “제로”. 정상이 아니야. 지도자 라는 것은 국민을 맡고있는 책임이 있지않나. 그런데도 (국민에 대해) 아무런 걱정도 하지않는다. 이것도 황씨에게 들었지만 김일성은 자주 서기회의를 열었다는데, 김정일은 부친이 죽고 나서 전혀 서기회의를 열지않은 것 같다. 자기와 사이가 좋은 두, 세사람에게만 얘기해 국가의 중요한 일을 정하고 있다.
그런건 공산주의도 아무것도 아니다. 세계에 없는 체제이다. 또 중국과의 관계도 다르다. 김일성 때는 중국이 항층 북한에 엄격했다. 한국과 북한의 양쪽에 부임경험이 있는 모국의 대사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김일성과 사이가 좋았던 그(대사)는 김일성이 중국의 태도에 불만을 털어놓는걸 자주 들었다고. 김일성은 그에게 “ (중국은) 우리를 완전히 바보취급해 멋대로 하고 있다. 무얼 말해도 안듣는다 기분이 나빠죽겠다.”며 분노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핵개발문제서도 중국이 진짜 엄격하게 대응하면 이러한 (위기적인) 상황은 되지않았다고 생각한다.
– 북한과 동맹관계에 있는 중국의 존재는 현재 진행중인 6자회담에서도 큰의미를 갖고 있다. 김부자 시대에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변화한 것이 미묘한 영향을 주는 것일까.
金 나는 (대통령재임중에) 중국 수뇌와 둘만이 북한문제로 얘기한 적이 있다. 나는 (북한에 관하여) “ 진상을 가리켜 달라. 식량이나 중유를 (북한에게) 원조하고 있는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중국수뇌는 “ 북한의 실태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 당신쪽이 말도 통하며 잘 알고있는게 아닌가”라고 한다. 내가 거듭해서 “ (중국과 북한은) 특별한 관계에 있다. 그런 말은 아무도 믿지않을 것이다”라고 물었는데 답은 같았다. 현재 중국은 (김정일정권을) 컨트롤못한다고 생각한다.
양측에서 의도적으로 서로 이용하는 것 뿐이다. 중국은 미국등에 대해 ‘북한에 영향력을 갖고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쪽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가운데는 중국(의 영향력)에 기대를 걸고있는 사람이 있지만 헛탕일 것이다. 북한은 중국이 아무리 말해도 듣지않으니까.
– 작년, 이라크의 후세인 전대통령이 잡힌거나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의 사찰을 받아들인 것도 김정일정권이나 6자회담의 행방에 여향을 미칠것으로 보는가.
金 후세인체포등을 들은 김정일은 상당한 쇼크를 받았을 것이다. 리비아의 뉴스에 관해서는 북한서는 당초 보도되지않았다고 들었다. 미국으로서도 보다 강한 태도로 나오지 않을까. 다만, 6자회담은 오래 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양보하지 않을거고, 북한도 핵개발을 이용해 최대한의 이익을 끌어내려 할터이니까. 북한은 항상 그렇다. 협상을 오래 끌어 “시간 벌이”를 한다. 결국 아무런 합의도 되지않는다.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와 압력>이라고 하지만 <압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북한은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나라다. 언제나 이상한 일을 하려한다.
나도 재임중의 5년간, 북한과 몇번이나 대화를 하려고 쌀도 보냈지만 북한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무엇이건 믿을수 없다. 그런 가운데 국제사회가 북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미국이 6자회담을 어디까지 필사적으로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수 없다. 앞으로도 (경제제재, 무력행사등을 포함해) 온갖 가능성이 “항상 있다”라는 상황이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 97년에 한국정부가 긴급대책안을 책정한 것에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 그 경위를 알려주시오.(김영삼정부는 97년7월 북한이 붕괴할 경우에 대비한 긴급대책안(이른바 30일계획)을 마련했다. 북한난민유출이 한달사이 한국에 10만, 중.러등에 20만으로 상정. 식량과 생필품 확보, 재정지원등 대응책을 정했었다.)
“북한 망한다”美제보로 긴급대책
金 한국은 여러 나라로부터 정보를 얻었지만 가장 중요시하는건 역시 미국정보다. 그때(97년)는 미국으로부터 “ (북한이) 쓰러진다”는 정보가 있었다. “ 갑자기 쓰러지니까 빨리 대처하지않으면 안된다” “쿠데타등이 아니라 자연히 쓰러진다”라고도 했다. 그런 정보가 오기는 처음이었다. 200만에서 500만이나 난민이 북한에서 밀려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동북부의) 강원도근처에 난민수용소 같은 시설을 만들 준비를 하였다. 계획안은 주로 남민대책이었지만 그러한 시뮤레이션을 한것도 처음이었다. 실제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의 김정일정권이 안정돼있다고는 결코 보지않는다. 기아로 많은 사람이 죽고있으며 부패도 점점 심해져간다. 다만, 지금의 정부는 이러한 계획을 만들지않고 있다고 본다. 북한에 대한 생각이 다르니까 말이다.
– 지금의 한국정부 얘기가 나왔는데, 94년 위기와 이번의 위기를 비교해 가장 틀린 것은 한국내 분위기가 아닐까. 한국사회서는 반미.친북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는데 이런 무드가 어떻게해서 조성되었는지 일본에서는 좀 알기 힘든 데가 있다. 다만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북한의 대남공작의 하나’라는 견해도 있지요.
金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는 공작은 설공하고 있지.(쓴 웃음) 가장 문제인 것은 (한국의) 지도자의 사고방식이다. 김대중 전정권이 “ 북은 걱정안해도 된다”라는 것같은 정책을 해왔다. 정말 난처한 문제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서 똑바로 해야된다. 만약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않았다면 북한은 훨씬 전에 한국을 공격했겠지. 이번 주한미군이 38도선부근에서 남쪽으로 철수하게되었지만, 미군이 한국에 있는 것이 어느 만큼 북한에 대한 견제가 돼있는가.
지금, 미국의 세계전략속에서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반미데모가 일어나거나, 한국의 지도자가 하는 일에 대해 “ 한국에 있고싶지 않다”라는 기분이 나와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얼마 만큼 피해를 입었는가. 데모를 하고있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러니까 김정일은 언젠가 반드시 한국에서 미군을 몰아낼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지금은 그러한 일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시대가 되었다.
– 작년9월에 일북정상회담이 실현됐을 때 한국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었지요. 북한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취하는 정권이 탄생할 가능성도 강했는데, 그 일과 일북정상회담이 실현한 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일북정상회담은 한국大選 대비
金 나는 그 일에 관계가 있다고 봐요. 김정일은 전부 공작적으로 하고있는 것이다. 꼭, 그런 일을 생각하고 했다고 본다. 한국에서 (대북강경파로의) 정권교체가 있다고 생각해서 일본에 유인책을 썼을 것이다. 일본은 일본 대로 북한이 “만나고 싶다”고 해왔으므로 “ 나쁘지않지”하고 생각했을 테지만….
– 그런데 일본에게는 역시 납치사건의 해결없이는 북한문제의 해결은 없지요.
金 나는 일.북한의 관계개선에 힘쓴 일도 있고 납치피해자의 가족이 나를 찾아온 일도 있다. 북한은 많은 납치피해자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그토록 젊은 사람들이 죽는 것은 이상하고, 전부 묘가 떠내려가버렸다니 있을수 없다. . 그중 한사람의 묘가 떠내려가는 일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부라는건 거짓이다. 나는 거의 모두 북한에 살아서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선데이저널(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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