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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수염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시 '쉽게 씌여진 시' 모두
              <1942. 6. 3>





 
"보통 우리는 냄새를 묘사할때 좋다, 나쁘다, 향기롭다, 역겹다등의 객관적 형용사를 쓴다.그렇지만 가끔씩 냄새에도 감정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즉, 기쁜냄새, 슬픈냄새, 미운냄새, 반가운 냄새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물리적인 사실과는 상관 없이 각자의 경험에 의해 그 냄새에 감정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연인이 이별을 고하며 준 꽃냄새는 아무리 좋은 향기라도 영원히 슬픈 냄새로 기억될수 있고, 어렸을 때 콩서리하여 구워먹다 새카맣게 타버린 콩 냄새는 그리운 냄새 일수 있다.
 
1학기가 끝나고 방학을 맞아 제대로 정리도 못한 채 대충 짐을 싸 길을 떠났다. 비행기에 들어서자 낯익은 냄새, 그것은 바로 이별냄새, 그리고 동시에 가슴 설레는 희망의 냄새 였다. 오래전 유학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던 때의 두려움, 슬픔,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후에도 여러번 비행기를 탔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 어느 비행기를 타도 그 특유의 냄새가 같은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LA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자 미국 특유의 공기냄새가 났다. 옅은 화장품 냄새 같기도 하고, 그냥 횡하게 넓은 공간을 스치는 바람냄새 같기도 하다. 그것은 조금은 흥분되고 또 조금은 붕뜬 느낌,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 듯한 타향의 냄새다.
 
지금 나는 LA 근교의 산마리노에 있는 헌팅턴 도서관에 앉아 이글을 쓰고 있다. 미국문학 관련 책들을 보기위해 고물 수동 엘리베이타를 타고 지하 서가로 들어오는 순간 코를 스치는 독특한 냄새, 무어라 형용할수 없는, 어딘지 측측하고 매캐한 오래된 책 냄새다. 이렇게 책 냄새를 맡고 가르치는 일이 내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이런저런 일에 부대끼고 시달리며 얼마간 까맣게 잊고있던 냄새다. 서가를 흩어 보는데 프랜시스 톰슨이라는 영국시인에 관한 책들이 꽃혀 있다. 대학 다닐때 영시개론 시간에 톰슨의 '하늘의 사냥개'라는 시를 배운적 있다." 나는 그로 부터 도망갔다. 낮과 밤 내내 그로 부터 도망갔다. 시간의 복도를 지나 내 마음의 미로를 지나, 나는 그로 부터 도망갔다. 그러나 그는 늘 내곁에 있었다. "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재미있는 비유로 묘사한 이시를 가르치며 교수님은 사람마다 독특한 마음의 냄새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심통난 사람은 심통 냄새를 풍기고, 행복한 사람 에게서는 기쁜 냄새가 나고, 무관심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모두 다 주위에 마음이 체취처럼 풍긴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얼마전 어떤 TV 프로에서 진행자가 병든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피자 배달을 하는 청년을 인터뷰 했는데, 그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진행자가 꿈이 무어냐고 묻자 "좋은 냄새가 나는 가정을 갖고 싶읍니다. "라고 답했다.  " 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 배달을 다니면 정말 지독하게 춥습니다. 그런데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현관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그집 특유의 독특한 냄새가 있읍니다. 집이 크던 작던, 비싼 가구가 있던 없든, 아늑하고 따뜻한 사랑의 냄새가 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딘지 냉랭하고 서먹한 냄새가 나는 집이 있읍니다. 아늑한 냄새가 나는 집에서는 정말 추운 바깥으로 나오기가 싫지요. 저도 훗날 그런 가정을 꾸미고 싶습니다. "
 
오래된 책의 향기속에 파뭍혀 앉아 새삼 나는 생각한다. 내 집의 냄새는, 아니 나의 체취는, 내 마음의 냄새는 무얼까?"

 

                                                            - 故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 교수.
 





3월인데도 눈이 많이도 내렸다.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불패의 정신'.... 아침일찍 눈이내린 새벽길을 차를 몰아 나서며 싸아하게 밀려오는 '세상의 향취'에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녀가 생각났다.  우리는 부자가 되기보다, 이처럼 '잘사는' 열심히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스쳐가는 하루하루의 일과에서 흩트러지고 약해지는 나를 발견 할때, 삶의 위기의 순간에서,,  우리의 삶, 때로는 초라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열심히'사는게 우리의 '몫'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 날개가 있다면 다시,, 저 하늘로 날아 오를수도 있는거 겠지.... 사랑한다, 사랑한다. 조금 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