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 갯벌에서
정암사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눈 녹은 물이 뚝, 내 이마를 때렸네
용서의 한 말씀
사북 같은 날들을 지나
고한 같은 날들을 지나
타오르지 않는 뜨거운 몸으로
나 여기까지 왔네
검붉은 계곡의 신음 소리와
채탄되지 못한 슬픔을 지나서 왔네
믿겨지지 않게
시리고 맑은 물 한 방울이
온몸을 서늘하게 뚫고 지나갔네
내 속에도 새 가지 돋으려나
마른 지팡이에
가지 뻗고 잎이 나고 붉은 열매 맺혔던
자장율사의 주목처럼
어떤것도
죽음이라 말하기에는 이른 것인가.
-나희덕 시 '때늦은 雨水'모두
---------------------------------------------------------------------------------------------------------------
-저녁을 적당히 먹고는 동네를 크게 한바퀴 돈다. 계절은 서늘하여 운동하기에 좋고,, 공원에도 씩씩하게 팔을 휘저으며 조깅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의사의 권유로 심한 운동을 하지 못하는 나는 선선해진 날씨에 자극을 받아 평소보다는 더 크게 원을 그려 한바퀴를 돌았다. 온몸에 땀이 맺히는데,, 공부하던 작은 아이가 식빵을 쨈을 발라 먹고 싶다던 생각이 나서 동네의 보아두었던 베이커리에 찾아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우유식빵을 하나 사고,, 참새가 방아간을 그냥 지나칠수 없듯이 간단한 파전에 동동주를 반되 시켜 시원하게 반주를 한다. 열이 올랐던 몸의 갈증이 시원한 탁주 한사발에 시원하게 소스라치며 가라 앉는다. 제법 나이가 드니,, 막걸리나 동동주, 약주같은 우리의 토속주가 입에 맞는다. 탁배기로 2잔 반,,, 반되면 적당히 기분이 오른다. 오후 10시 15분,, 공부하던 아이들이 "아빠, 운동하고 오셨어요"하며 반겨주고 식빵을 내미니 반가워하며 딸기잼을 발라 우유에 커피에 간식으로 챙겨 방으로 들어간다. 유명 연예인의 자살로 쇼킹한 하루 였는데,, 아이들은 '일상사의 한 부분'으로 보고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싶으니,,, 어쨌든 다행이다.
-작은 아이는 12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고, 큰 아이는 새벽 04;30분에 잠이 들며 일찍 깨우지 말라는 쪽지를 방문에 붙여 놓았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시험때가 되면 집에 비상이 걸린다. 아이들이 다 커서 군대에 갔거나 대학을 다니는 아이들을 둔 친구들을 보면, 내심 부럽지만,, 그 아이들은 또 취업에 복학에 이성문제에,,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모양만 다를 뿐 '자식'이라는 존재로서 여전히 걱정의 눈길이 따라 다닌다. 하기야 부모의 눈에는 자식이 50이 넘어도 '애'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어느덧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많이들 자랐다. 아침 열시에 큰 아이를 깨우고 미루어 두었던 월간지와 다 읽지 못한 책들을 읽어 내려간다. 볼 책들은 하루에도 수십권씩 쏟아져 나오는데,, 나는 집의 책도 다읽지 못하고 있으니,, 올 가을에는 독서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할 것 같다.
-오후 5시를 넘기자 큰 아이는 학원으로 출발하고,, 베란다 밖으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린다. 금요일, 아피트 단지에 정기적으로 장이 열리는 날이다. 당근만 사오면 된다며 tv만 보는 마눌님을 "산책 좀 하자" 하며 끌어내니 작은 아이도 아빠도 간다하니 따라 나선다. 오늘이 휴일이라 제법 사람들이 많다. 중국산 제품의 영향으로 모든 식품은 원산지를 꼭 묻곤 하는데,, 난 왜 고구마, 단호박 같은 것만 보면 사고 싶은지,, 밤고구마라는 말에 한봉지를 사고 당근도 한봉지,, 반찬파는 가게에 이르니 마눌님이 내가 좋아하는 파김치가 있다며 맛을 보라 한다, 더블어 꽃게장도 맛있다 하여 맛을 보니,, 제법 맛이 있다. 반찬집에서 내 주머니 돈을 털어 게장과 파김치를 사고 각종 나물을 다섯가지 담아 놓은 것도 하나,, 작은 아이가 고른 뻥튀기 한봉지,, 큰 아이와 작은아이 양말도 두컬레씩,,, 과일파는 총각은 포도가 안팔리는지 '도와달라'하는데,,, 돈이 없어 바나나만 한송이,,, 그래도 이런 장터에는 사람사는 맛이 우러나고 여기저기 남녀노소,, 노점에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면,,, "열심히 살고 싶다"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이글을 쓰는 이 시간에 까지 물건을 다 팔지못한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들려온다. 산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데,,, 이세상에 왔으면 그 삶이 어떠한 처지에 있던 끝까지 열심히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내 삶을 이겨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겨진 사람들에게 "잘 살라고,, 부탁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오늘도 밤 2시를 넘기고 돌아올 큰 아이를 생각하며,, 더욱 더 열심히 살자고 다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