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나비조차 낮게 나는가
내려놓을 것이 있다는 듯
부려야 할 몸이 무겁다는 듯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달았던 사과나무,
열매를 다 내려놓고 난 뒤에도
그 휘어진 빈가지는 펴지지 않는다
아직 짊어질 게 남았다는 듯
그에겐 허공이, 열매의 자리마다 비어 있는
허공이 열매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빈 가지에 나비가 잠시 앉았다가 날아간다
무슨 축복처럼 눈앞이 환해진다
아, 네가, 네가, 어디선가 나를 내려 놓았구나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
사과나무 그늘이 환해질 수 있을까
꿰멘 자국 하나 없는 나비의 날개보다
오늘은 내 白結의 옷이 한결 가볍겠구나
아주 뒤늦게 툭, 떨어지는 사과 한알
사과 한알을 내려 놓는 데
오년이 걸렸다.
- 나 희덕 시 '사과밭을 지나며' 모두
2005. 시집 '어두워 진다는 것'
* 전생에 나무였을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눈도, 비도, 바람도, 추위도 오로지 몸 하나로 굳굳이 견디어 내는 나무....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그러한 나무. 해마다 시월이면, 높아지는 하늘만큼 푸르른 하늘을 우러르며 문득 생각해 보곤 한다. 아이들이 자라고, 내 몫의 삶이,, 입지가 점점 좁아지면서 한쪽으로 마음을 내려 놓게 된다. 남자로서, 아버지로서, 사회인으로서의 하나, 둘씩,, 내려 놓아야 할 욕심과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나, 둘씩 챙겨보곤 한다. 순리대로,, 산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이 였구나! 이것, 저것 나 스스로를 무장해제 시키고 나니,, 남자도 고집 센 중년의 모습도 아닌 심약하고 초라한 나만 남았다.
나 자신을 정리하고, 완성해 가는 모습을 스스로 깨닿는 것이 결코 어둡거나, 스스로를 비탄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삶의 과정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을 이제는 다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심장을 찌르는 일이 였다 해도 이제는 다 용서가 되었다. 그들도 나를 이해하고 용서 했을까? 각자의 몫이리라. 2007년도에 시집을 사며 "산다는 것은 짙든, 옅든,, 조금씩 어둠에 물들어 가는 것. 후회도 애증도 없이.... 사랑하며 살자. 2007. 10. 1" 이라고 적어 놓았구나. 이때의 나는 무슨 마음에서 이렇게 적곤 했던 것일까?!.....
아픈 몸을 약으로 다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매년 새로운 한해가 감사하고,, 겨울을 목전에 둘 때마다 잘 넘기고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이제 부터라도 스스로에게 아끼지 말자고 다짐 해 본다. 잘 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스로에게 다짐한 작은 호사나 즐거움들을,, 스스로에게 조금은 너그럽자고 생각 해 본다. 때론 술 한잔을 마신다. 몸의 상태에 따라 해독이 며칠씩 가기도 하지만,, 그 술 한잔의 느낌이 그 분위기가 항상 고맙다. 아직도 이것 저것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살아있고,, 좋은 벗들도 있고,, 좋은 음악이 흐로고,,, 진한 커피한잔. 이것으로도 감사하다. 세상의 일들이 찬찬히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에도, 세상은 이런 모습으로 흘러가곤 했을텐데,,,,
내려 놓는다는 것은 이런 마음 이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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