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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부부라는 인연, 그리고.., love

사랑한다, 사랑한다.




저무는 하늘
동짓달 서리 묻은 하늘을
아내의 신발 신고
저승으로 가는 까마귀
까마귀는
남포동 어디선가 그만
까욱하고 한번만 울어 버린다
오륙도를 바라고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한다.
저무는 바다.
돌 하나 멀리멀리
아내의 머리 위 떨어지거라.


- 김 춘수 시 ‘이중섭4’ 모두


은지화 ‘부부’




중섭이 그대 지금 어디 있는가
곡기 다 끊고 밤에 술 마시고 낮에 물 마시고
헌헌장부 그 큰 키로 성큼성큼 걷는 모습 눈에 선한데
누구도 그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네

사위는 백년지객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대 일본 가서 찬밥 취급에 문전박대 당한 게 아닌가
아내 남덕이와 두 아들 태현이 태성이 눈에 밟혀서
은박지에다 그리고 또 그리고
울다가 엽서에도 그리고
꿈에라도 만나면 그날은 행복했다지
중섭이 도대체 어디로 숨은 겐가

그대가 표지 그림 그리고
내가 원고를 모았지, 응향凝香………
그때 우리 참 젊었지 자넨 소를 따라다녔고
난 이남으로 탈출하였지

자네 노래 다시 한 번 듣고 싶으이*
테너 목소리, 술집 처마 쩌렁쩌렁 울리던 그 목소리
내 시집에 자네 그림 「달과 까마귀」 얹고
내 건네는 술잔에 자네 눈물 섞어 마시다
하룻밤 사이에 빈털터리 되면
자넨 빚 못 갚는 그림 다시 그리고
난 돈 안되는 시 새로 쓰지 뭐

뭐라도 먹어야 그림 그리지 않나
세발자전거 사준다는 약속 못 지킨 게 한이라고
곡기  다 끊고 밤에 술 마시고 낮에 물 마시고
어디로 사라진 겐가 소 눈망울을 한 사람아


* 이중섭은 살아생전에 독일 민요「소나무」와 이광수 시에 김대현이 곡을 붙인 「낙화암」을 즐겨 불렀다.

- 이승하 시 ‘시인 구상이 화가 이중섭에게’모두
[생애를 낭송하다], 천년의시작, 2019.


은지화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았다
두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 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 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없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볕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꼬기는 아이들과 헤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꼬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대기에 세 든 소라게처럼.


  -나희덕 시 '섶섬이 보이는 방'모두



섶섬은 이중섭박물관 앞에서 더 잘보였다



총각시절에 제주도에 들릴일이 있었을 때,,, 이중섭 화백이 살았던 집에 가본적이 있다. 그때의 서귀포가 가까운 그곳은,,, 당시의 시골스런 풍경과 어울리게 초라하지만 다소곳하게 어울리던 풍경이 가슴에 다가왔었다. 2년전인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모두가 다시 이중섭의 집을 찾았을 때,,, 이제는 잘 꾸며 놓았고 주위는 '그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발전하여 낯설게 보이며 주위의 눈부신 외관의 변화에도 그 집만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이중섭의 집은 더욱 쓸쓸하게 보였으니,,, 빈방에 덩그라니 걸려있던 이중섭의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사진만이 쓸쓸했었고,,, 위쪽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에는 이중섭의 복사화 몇점,, 다른 이들의 작품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6, 25가 발발하자 피난을 떠났던 이중섭 부부가 부산에 도착한 것이 1950, 12월 초였다. 그 이듬해 사계절을 제주도에서 보냈다. 서귀포 근처에 고방을 얻었다. 이중섭은 일본 유학시절 이래 '턱(아고)'긴 이(李)씨라 하여 '아고리'라고 불렸고, 그의 일본인 아내 마사코는 연애시절 둘이 산책을 하다 그녀의 발가락을 삐었던 일 이래로 '발가락군' 이라 서로를 애칭 했다고 한다.


초가집 오른쪽 귀퉁이 ‘한 칸’


방 ‘한 칸’



-아침에 문득 이 시들을 읽고 적으며, 서로를 이해 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나이를 해마다 더하며 끊임없이 되묻는 이 질문은,,  정답은 없다. 내 자신을 온전히 비우기 이전에 “남녀의 사랑'은 세월의 파고에 씻겨지고,, 부모의, 자식에의 사랑만이 '영원히' 남는다. 하지만, 하지만,, 바라고 원하노니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함으로 낮출 수 있기를 바라고 원한다.


사람은 ‘섬’이란 생각.



* 부부의 인연 이란게,, 얼마나 깊은 인연일까?!.., 그 수많은 낮과 밤 이후로도 서로가 그렇게 미워하고 싸우고, 눈물짓고 아파하고, 용서하며 또 미워하고..,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용납 한다는 것’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할까?!.. 사랑하기에 부모이기에 ‘가족’이란 의미로 ‘모든 것’을 용납한다. 얼마나 벅찬 감정인가, 사랑하고 마음에서 부터 인식하고 조건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존재.


아프기에 더욱 더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