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 삼도
영하 이십 도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 오 도 영상 십삼 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러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 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황지우 시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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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사이에,, 기아체험 프로나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성금을 내고 있고, 꾸준하게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주위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마음을 나누는 따스한 손길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들이 종교를 물으면 '무교'라고 대답을 하지만,, 유아시절부터 천주교의 토대위에 기독교로 신앙을 키워온 현재의 나는,, '무교회 평신도'이다. 왜냐고 물으면 길고도 구차한 소리가 될 듯 하여 생략하고,, 교회를 떠나고 나서 나름대로 나만의 십일조를 그분께 드리듯이 이웃들에게 나눠왔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나름대로 꾸준하게 나만의 방법으로 작은 금전이나 작은 시간을 쪼개어 함께 살아왔는데,, 하고 있는 사업이 잘 안되고 어려움이 많아 기도에도 불구하고 금액이나 방법을 나름대로 줄이고 있다. 내가 어려움으로 잘 되는 사람이 있겠고, 내가 줄임으로 늘리는 사람이 있기를 기원 한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아라" 이 말씀은 젊은시절 내 가슴에 살아있는 말 인데... 지금까지 토요일이나 일요일,, 또는 쉬는 날에는 "속이 불편하다" 거나 "소화가 안되서,,"라는 말로 한끼를 금식해 왔다. 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세상의 굶주리는 사람들과 마음을 함께 해왔던 것인데,, 이는 내 중학교 시절,, 교회학교에서 고아원을 찾아서 '위로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갖을 때의 경험 때문인데,, "평화원"이라는 의정부의 고아원... 이곳에는 4~5살의 유아부터 중, 고등학교의 학생들도 있었는데,,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사회로 나가야 하는 그런 시설이였다. 중학생이였던 당시 우리의 연령에 맞추어 유아들과 국민학교 원생들만 같이 시간을 함께하게 되었는데,, 고아원 원아들과 여러 프로그램을 나누고 모두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교회에서 모든 준비를 해 갔는데 김치를 안가져가서 김치는 고아원의 김치를 꺼내 놓게 되었다. 식사하는 도중에 그때도 김치를 좋아했던 나는 무심코 김치를 집어 입으로 가져 갔는데,, 물큰하게 올라오던 역한 신내와 비릿함... 내 앞의 같은 교회의 친구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얼른 뱃어 내는데,, 무심코 두리번 거리며 뱃어낼 것을 찾던 내 눈에 나를 뚜렷히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 11살이나 12살쯤 되었을까? 내 '행동'을 무심한 듯, 또렷하게 바라보는 검은 그 눈동자에 나는 차마 그 신김치를 밷지 못했다.
-"'잠시 보는 것,잠시 함께 하는 것,잠시 함께 나누는 것'의 그 황량한 거리감....'" 그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일정한 시간까지 그곳에서 자라며 후에 홀로 독립해야 하는 그애들과 나는,, 엄청난 '거리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랬었어도 아프지만 생각한다. 모든 여건에도 서로가 나눌수 있으면 아주 작은 공감이라도 나누어야 한다고,, 그동안 내가 함께 나누었던 몇몇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사회인이 되었으며,, 그들 또한 작은 이웃들을, 친구들을 돕고 있다고 믿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나도 나이를 먹었으며 세월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때로 '그 이웃들'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요즘들어 내게 찾아오는 작은 시련과 고통들,, 다소 나른해지고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보면서 내 '경제력'이나 '여유'를 핑계 삼지말고 이번의 시련을 계기로 하루에 두끼씩의 식사를 계획해 본다. 한끼의 절식으로 나눌 수 있다면,, 그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리라. 나무는 나무 스스로 나무임을 피워 내는데,, 나는 내 스스로 나임을 어찌 이룰까.. 적당한 운동과 적당한 식사.. 때로 비대해지게 보이는 내 몸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져본다. 잘 해 나갈 수 있을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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