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이향지]
내가 심어 내가 먹는 손바닥농사
뽑아도, 뽑아도, 쳐들어오는 잡초들과의 전쟁이다
나는 도라지 심었는데
쑥 민들레 어깨동무로 자란다
나는 무 배추 상추 시금치 아욱 심었는데
쇠비름 고들빼기 씀바귀 더 팔팔하다
내가 내 감자 고구마 서리태 옥수수에게 타이른다
쟤들 좀 봐라, 꾸짖을수록
내 잎과 열매 한층 모자라다
토박이 경운기 빌려서 깊이 갈아엎고
닭똥 푸집 섞어 주고 싶어도
하늘 높은 줄만 아는 다락밭이다
똑같은 흙, 똑같은 안개, 똑같은 햇볕
잡초도 사는데
내 희망 먹고 자란 푸성귀보다
구박덩어리들이 더 반들거리니
내가 게으른 탓이다, 내가 경계를 느슨하게
잡초도 식구로 보아주기로 한 날부터
잡초가 잡초 쪽으로 나를 엎어 버린 것이다
내가 계속 그늘 속에 앉았거나 누워 있으면
쑥 민들레 씀바귀들에게 내 몸 내어 주어야 할
꿈에도 적으로 여긴 적 없는 하찮은 적들이
내 몸 뙤약볕 속으로 내몬다
내가 심지 않은 풀이어서
내가 가꾸지 않은 풀이어서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곳은 많은 허기진 것들이어서
애써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저절로 잘 자라서
살거나 죽거나 베어 내거나 몽땅 사라지거나
내가 상관 않아도 될 것들이어서, 잡초
예사로 불러 준 이름들이, 한꺼번에 꽃, 꽃, 꽃
한 장 꽃받침 위로 가볍게 내 몸을 들어 올려서
- 햇살 통조림, 천년의시작, 2015
들꽃 이름 [권달웅]
우리네 산에 들에는 하늘을 찌를 듯 키 큰 나무들도 많지만 풀벌레와 같이 자라는 키 작은 들꽃들은 더욱 많습니다. 바람 부는 날 바람 따라 산에 들에 피는 들꽃 이름을 불러보면 오래 소식 끊긴 친구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비비추 더워지기 으아리 진득찰 바위손 소리쟁이 매듭풀 절굿대 노랑하늘타리 딱지꽃 모시대 애기똥풀 개불알꽃 며느리배꼽 꿩의다리 노루오줌 도꼬마리 엉겅퀴 민들레 질경이 둥굴레 속새 잔대 고들빼기 꽃다지 바늘고사리 애기원추리 곰취 개미취 … 덕팔이 다남이 점순이 간난이 끝순이 귀돌이 쇠돌이 개똥이 쌍점이 복실이… 불러보면 볼수록 정겨운 들꽃 이름들 속에서 순박했던 코흘리개들이 웃습니다.
- 크낙새를 찾습니다, 책만드는집, 2001
거시기 [박제영]
거시기한 맛이 읍서야
긍께 머랄까 맥업시 맴이 짠~해지는, 거시기 말이여
느그 시는 그기 읍당께로
이 고들빼기 맹키로 싸한 구석이나 있으믄 쪼매 봐줄라나
그것도 읍잔여
한마디로 맹탕이랑께
워따 가스내 맹키로 삐지기는
다 농잉께 얼굴 피고 술이나 마시뿌자
내 야그가 그로코롬 거시기 하면 서안나가 쓴 동백아가씨란 시가 있어야
낸중에 함 보라고 겁나게 거시기 할텡께
"장사이기가 오늘은 내 서방이여"
이 대목에선 워매, 가심이 칵!
환장해분당께
아지매, 무다요 술이 읍서야
지금 거시기해부렸응께 싸게 갖구 와야
- 『주변인과시』2010 가을호
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고 [고재종]
고들빼기는 씨가 잔게 흙에다 섞어 뿌리고
도라지는 잔설 있을 때 심거야 썩지 않는다네
진안장 귀퉁이 주재순 할매의 씨앗가게
콩씨 상추씨 아주까리씨며 참깨씨랑
요모조모 다 있는 씨오쟁이마다 쌔근거리는 씨들
요렇게 햇볕 좋고 날 따수어야 싹이 튼다네
흙이 보슬보슬해져야 간지럼도 태우고
보슬비도 와서 촉촉해져야 쑥쑥 자란다네
세상에 저 혼자 나오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다 씨가 있어야 나온다는 할매 말에
금세 수숫잎이 일렁이고 해바라기가 돌고
배추가 깍짓동만 해지고 참깨가 은종을 울리는
장터, 이제 스스로는 무얼 더 생산할 수도 없이
유복자가 해준 틀니에 등은 온통 굽었는데
나는 작은 게 좋아요, 씨앗들이 다 작잖아,
요것 한 줌이면 식구들 배불리 먹인다는 할매는
길 걸을 때면 발길 닿는 데마다 씨오쟁이를 열어
갓씨 고추씨 오이씨 죄다 뿌린다네
할매에겐 땅 한 뼘 없어도 걸어댕겨 보면
천지에 온통 오목조목 씨뿌릴 땅이어서
어느 누가 거두어 가든 상관 않고 뿌린다네
누가 됐든 흡족하게 묵으면 월매나 좋겄냐고.
- 애지 2005년 가을호
눈사람 [송종규]
늦은 아침상에 네 사람이 둘러앉는다
바깥은 대설주의보
꽁꽁 언 발을 들고 추어탕 그릇 속으로
섬진강의 미꾸라지들이 뛰어 들어온다
네 사람이 모두 밥그릇을 비우고 나자, 누군가
《그윽한 아침이었다》고 낮게 말한다
고들빼기 갓김치 미나리 갈치 속 젓 정갈한
南都의 아침상이 문득 그윽하고! 환해진다
바깥은 대설주의보
발바닥에 체인을 감고
눈사람 두 사람이 더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와 마주앉는다
미꾸라지 언 발이 지글지글 끓는, 새집식당 좁은 구들장이
모락모락 녹는다
한 장 남은 달력 속 여자가 입김을 불며 녹아 내린다
어떤 회한의 삶도
더러는 녹아서, 송편처럼 다시 빚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바깥은 폭설주의보
무덤들이 말랑말랑해진다 지글지글
주검들이 끓어오른다
녹지 않으려고
여섯 사람이 미끌미끌 흔들흔들
마음 바깥으로 걸어 나간다
- 녹슨 방, 민음사, 2006
고들빼기 [서정춘]
먹어 보면 안다
어째서 궁중 진상품이었는지 먹어 보면 안다
놋숟가락으로 떠 올린 뜨신 햅쌀밥에
옻칠 젓가락이나 대나무 젓가락으로
고들빼기김치를 얹어서 먹어 보면 안다
이 맛을 쓰다고 해야 하나
떫다고 해야 하나
먹어 보면 안다
젓국에 젖어 우러난 쓴맛이냐
쓴맛을 다스리는 다진 마늘, 생강 맛이냐
이 맛 저 맛 다스리는 매콤달콤 신맛이냐
형용사가 풍부한 한국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나로그 맛이냐
먹어 보면 안다
한 번도 두 번도 여러 번도
입 안으로 온몸이 들어와 자지러지는
이 맛의 극치!!
아니다,
끝으로 맛볼 것은
이빨 사이에 끼었다가 씹히는
금싸라기 같은 참깨 맛!!
- 신혼때 부터 맞벌이를 하여 사먹는 반찬에 익숙 하였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뭐든지 맛있는 반찬에 그 고마움을 몰랐는데,, 양념 두어가지 넣고도 쓱쓱 비벼내면 맛있던 ‘비빔국수’나 친구들이 놀러와서 맛있게 먹고 정말 맛있다고 더 청하던 ‘배추김치’의 기억은 전설이 되었다. 작은 누이가 엄마의 음식솜씨를 물려 받아서 김장 때는 맛있는 김치를 얻어 먹고는 했는데,,
이도 누이가 나이를 먹으니 부탁 하기가 어렵다. 농협김치, 홍진X 김치, 조선호텔 김치, cj 김치, … 등등을 섬렵하다가 종가집 김치로 안착했다. 그런대로 입맛에 맞아서 만족 하던 차에 마눌님은 전라도 ‘고구마 줄기 김치’에 나는 가끔씩 단골 식당에서 나오는 “고들배기 김치(씀바귀 김치)에 매혹 되었다. 올 여름의 떨어진 입맛을 이 고들배기 김치 하나만 있어도 찬물에 밥 말어서 한그릇 ‘뚝딱~’ 이랄까! 총각시절 해외로 출장 갈 때에도 ‘사무치던’게 ‘김치’ 였는데,,
이놈의 김치사랑은 운명적 이라고나 할까?!,,,,.
시 숲에 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