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로 가는 열차에서
나는 그에게 나를 보여 주었다,
보르도의 카페에서
나는 그녀에게 나를 읽어 주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구두가 참 이쁘네요.
커피아니면 홍차?
이탈리아어를 좋아하세요?
서울의 여름도 보르도 처럼 더워요?
사교의 예식을 생략하고 우리는 상대에게 자신을 던졌다.
서로의 심장을 만지고, 썩은 창자를 뒤집어 보였다. 뒤엉킨
생각과 감정의 실핏줄들을 몇 마디로 정리해서 서로에게 안
겼다. 식탁위의 오물렛이 식기전에 나는 그녀의 현재와 과
거를 마법의 구슬로 들여다보듯 명쾌하게 포크로 찍어 떠올
렸다.
외국어로 고백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철수와 순이에게 감
추었던 복잡한 자화상을 리처드와 파트리샤에게 그려주며,
마음을 내려 놓았다. 보르도에서 만난 푸른 눈동자 속으로
들어가 나는 편안하게 다리를 뻗었다. 고해 뒤의 지저분한
뒤끝 없이.
-최영미시 '외국어로 고백하기'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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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묘하게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를 하게 된다. 이런 경우는 이상하게도 외국인과의 대화에서 보다 같은 동종의 업계의 일을 하는 사람끼리, 특히 유학생활을 오래하여 모국어에 익숙치 않은 유학생출신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종종 느끼게 되는데,,, 이럴때에 영어로 대화를 해주거나 불어로 얘기할때 좀더 빨리 이해하고 그들이 유학하고 공부한 지역의 공통된 화제를 얘기하다 보면 좀더 빨리 친해 지기도 한다.
-예전에 직장에서 친숙하게 지내던 후배를 만나서 얘기를 하던중에 예전에 초창기에 고마웠던 얘기가 나왔다. 그당시에 감사하고 고마웠던 표현을 이제는 '한국적 감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여 오랫만에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우리가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단어나 문장을 죽어라 외우고, 문법을 따지고 영화 몇편을 제대로 볼수 있다고 하여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하게 얘기하는 언어의 전달은 어느정도의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언어의 미묘한 늬앙스는 부단한 노력없이는 서로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후배는 깨달은 듯 했다.
-이제는 잘쓰지도 않는 외국어를 오래간 만에 만난 후배와 더듬대고 이어가며 문득 유쾌해진 나를 발견했다. 언어란 남들이 잘쓰지 않고 서로에게만 전달 된다고 생각되면 다소 경망스러워 진다. 실소하고 악수를 나누고 해어지며 역시 외국어는 쓰지않으면 자꾸 잊게 된다는 진리를 다시 깨닫는다. 전에 읽던 최영미 시인의 시가 크게 공감이 가서 옮겨놓아 본다. 언어만 전달 한다면,,, 영혼없이 나를 내려놓고 간다면 그녀의 말과 같이 "외국어로 고백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글로, 말로 내 영혼을,,, 마음을 표현하기는 얼마나 큰 어려움 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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