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춧돌을 어디에 놓을까
이쯤에 집을 앉히 는 게 좋겠군
지붕은 무엇으로 얹을까
벽은 아이보리색이 무난하겠지
저 회화나무가 잘 보이게
남쪽으로 커다란 창을 내야겠어
동백숲으로 이어진 뒤뜰에는 쪽문을 내야지
여기엔 자그마한 연못을 팔 거야
곡괭이를 어디 두었더라
돌담에는 마삭줄과 능소화를 올려야지
앞마당에는 무슨 꽃들을 심을까
대문에서 현관까지 자갈을 깔면 어떨까
소리만 들어도 누가 오는지 알수 있을 테니까
저 은행나무 그늘에는
나무 의자를 하나 놓아야지
그래도 식탁은 둥글고 큼지막한 게 좋겠어
벌써 문 밖에 누가 찾아온 모양이군
오늘도 집을 짓는다
내 것이 아닌 그 땅위에, 또는 허공에
생각은 돌담을 넘어
집터 주위를 다람쥐처럼 드나든다
집을 이렇게 앉혀보고 저렇게 앉혀보고
수없이 벽돌을 쌓았다 허물며
마음으로는 백 번도 넘게 그 집에 살아보았다
그러나 내것이 아닌 그 땅에는
이미 다른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지 않은가
- 나희덕 시 '내 것이 아닌 그 땅위에' 모두
* 어려서 장춘동의 단독주택에서 자랐다. 가세가 기울어 국민학교 3학년 때에 약수동 판자촌으로 이사를 갔었고, 철부지였던 그당시의 나는 그저 이웃에 또래 친구들이 많아 즐거윘다. 부모님은 그 이후로 이곳저곳으로 이사 하시며 많은 고생을 하셨다. 그 이후에 단독주택도 아파트도 사서 편히 살게 해 드린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항상 장충동의 그 옛집을 잊지 못 하셨다. 군에서 제대후 직장을 다니다가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장춘동의 옛집은 왜그리 낯설고 커다랗던지! 이후에도 장춘동의 그집은 아쉬움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10 여년 전에 충청도 보은땅에 집을 하나 지었다. 장인어른이 사놓으신 땅에 건축비만 조금 보태 지은 것인데 가끔 내려가 온가족이 쉬고 올라오곤 한다. 시간에 쫒기는 삶을 살다보니 제대로 된 내집이 없다. 진정한 내것, 내집이란 내 정성과 손길과 마음이 닿아야 한다. 언젠가 모두 정리하고 보은의 시골이나 제주도로 내려가 작은 그러나 튼튼한 흙집을 하나 지어서 살고 싶다. 진정한 내것이 하나 없는 세상에 작은집 하나, 내것으로 이름붙여 잠시 열린 눈으로 살다 가고싶다.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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