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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시 - 2월의 동백, 김 승희 시. 2월은 좀 무언가가 부족한 달 동백꽃은 한떨기 한떨기 허공으로 툭 떨어진다 떨어져서도 꿈틀대며 며칠을 살아 있는 꽃 모가지 낙태와 존엄사와 동반자살, 그런 무거운 낱말을 품고 선홍빛 꽃잎, 초록색 잎사귀 툭, 동백꽃은 모가지째로 떨어져 죽는다 부활이란 말을 몰라 단번에 죽음을 관통한다 더 이상 퇴로는 없었다 칼로 목을 자르자 하얀 피가 한길이나 솟구치고 캄캄해진 천지에 붉은 꽃비가 내렸다는 겨울 속의 봄날 산 채로 모가지가 떨어지고 모가지째로 허공을 긋다가 땅바닥에 툭 떨어져 피의 기운으로 땅과 꽃봉오리는 꿈틀대고 한떨기 한떨기가 피렌체 르네상스 같은 동백꽃, 너무 아름다워 무서웠던 파란 하늘 아래 꽃의 성모 마리아, 빛나는 한채의 두오모 성당의 머리를 들고 툭, 무겁게 떨어지는 동백꽃 여한 없이 살았다.. 더보기
섬진강, 물길 따라 피고 진 ‘꽃과 사랑’ - 김 용택 시.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에 산 너머 그 너머 검은 산 너머 서늘한 저녁달만 떠오릅니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듭니다 소쩍새만 서럽게 울어댑니다 - 김 용택 시 ‘구절초 꽃’ *나무, 창작과비평사, 2002 아내는 나를 시골 집에다 내려놓고 차를 가지고 돌아갔다. 갑자기, 가야 할 길과 걸어야 할 내 두 발이 흙 위에 가지런히 남는다. 어머니 혼자 사시는 우리집 마당에 발길 닿지 않는 땅이 이렇게 많이 있다니? 가만가만 돌아다니며 마당 가득 발자국을 꼭꼭.. 더보기
‘그대’ 가까이,,‘존재의 부재‘’ - 이 성복 시 1 바람에 시달리는 갈대 등속은 저희끼리 정강이를 부딪칩니다 분질러진 다리로 서 있는 갈대들도 있엇습니다 그대 가까이 하루 종일 햇빛 놀고 정강이가 부러진 것들이 자꾸 일어서려 합니다 눈 녹은 진흙창 위로 꺾인 뿌리들이 꿈틀거립니다 그대 가까이 하루 종일 햇빛 놀고 2 자꾸만 발꿈치를 들어 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때로 기다림이 길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들어요 까마득한 하늘에 새털구름이 떠가고 무슨 노래를 불러 당신의 귓가에 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질 리 없고 헤어지지 않았어도 손 잡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다림이 깊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늘어납니다 3 나무 줄기 거죽이 자꾸 갈라지고 읽을 수 없는 글자가 새겨집니다 저희는 알 수 없습니다 밥 먹고 옷 입는 일 외에는부러진 나뭇가.. 더보기
내 가슴의 노래 - 시, 더하여 내 ‘어리석음’. 사랑스런 프랑다스의 소년과 함께 벨지움의 들판에서 나는 藝術의 말을 타고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손을 들어 내가 그린 그림의 얼굴을 찢고 또 찢고 울고 있었고, 나는 당황한 現代의 이마를 바로잡으며 캔버스에 물빛 물감을 칠하고, 칠하고 나의 의학 상식으로서는 그림은 아름답기만 하면 되었다. 그림은 거칠어서도 안되고 또 주제넘게 말을 해서도 안되었다. 소년은 앞머리를 날리며 귀엽게, 귀엽게 나무피리를 깍고 그의 귀는 바람에 날리는 銀잎삭. 그는 내가 그리는 그림을 쳐다보며 하늘의 물감이 부족하다고, 화폭 아래에는 반드시 江이 흘러야 하고 또 꽃을 길러야 한다고 노래했다. 그는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現代의 고장난 수신기와 목마름. 그것이 어찌 내 罪일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내 罪라고 .. 더보기
‘생활 속에 핀 꽃’ - 나 희덕 시. 17년 전 매미 수십억 마리가 이 숲에 묻혔다 그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해다 17년의 어둠을 스무 날의 울음과 바꾸려고 매미들은 일제히 깨어나 나무를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 앉을 뿐 멀리 날 수도 없어 울음을 무거운 날개로 삼는 수밖에 없다 저 먹구름 같은 울음이 사랑의 노래라니 땅속에 묻히기 위해 기어오르는 목숨이라니 벌써 소나기처럼 후드득 떨어져내리는 매미도 있다 하늘에는 울음소리 자욱하고 땅에는 부서진 날개들이 수북이 쌓여간다 매미들이 돌아왔다 울음 가득한 방문자들 앞에서 인간의 음악은 멈추고 숲에서 백 년 넘게 이어져온 음악제가 문을 닫았다 현(絃)도 건반도 기다려주고 있다 매미들이 다시 침묵으로 돌아갈 때까지 - 나희덕 시 ‘매미에 대한 예의‘ [가능주의자], 문학동네, .. 더보기
자작나무 2. 기억은 자작나무와 같아 1 [정끝별] 무성히 푸르렀던 적도 있다. 지친 산보 끝 내 몸 숨겨 어지럽던 피로 식혀주던 제법 깊은 숲 그럴듯한 열매나 꽃도 선사하지 못해, 늘 하얗게 서 미안해하던 내 자주 방문했던 그늘 한순간 이별 직전의 침묵처럼 무겁기도 하다. 윙윙대던 전기톱날에 나무가 베어질 때 쿵 하고 넘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면 안다 그리고 한나절 톱날이 닿을 때마다 숲 가득 피처럼 뿜어지는 생톱밥처럼 가볍기도 하고, 인부들의 빗질이 몇 번 오간 뒤 오간 데 없는 흔적과 같기도 한 것이다. 순식간에 베어 넘어지는 기억의 척추는 * 자작나무 내 인생, 세계사(1996) 기억은 자작나무와 같아 2 [정끝별] 유난히도 하얗던 자작나무를 보면서도 가을 겨우내 心身蟲에 나무 몸 안이 파먹히고 있었음을 못 보았다.. 더보기
새해,,. 2024년에 덧붙여, 백야 [최재원] 새해가 밝, 발, 밖, 박, 았습니다 눈보다 손이 먼저 부셔요 손보다 찌르르 젖은 마음이 부셔요 너를 입(에 넣)고 굴릴 때 혀가 먼저 부셔요 부셔요 부셔요 시고 부신 너(들) 구름이 해를 찢어 놓습니다 갈래의 해도 하나의 해이니 하얗게 얼어 영원히 젖은 파도만이 꾸역꾸역 다가옵니다 해도 구름도 파도도 쉬지를 않네요 어떻게 된 일인지 참 우리는 집이 없어요 갈래에 무리에 보라에 잠깐 머물까요 우리? 해 해 해는 너무 밝, 밖, 발, 박나요? 나는 그들 그들 그들이라고요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잘 모르니까 우리 서로 아는 체는 말아요 아니 우리 누일 데 없는 몸을 해 위로 겹쳐요 차가울수록 두께 없는 높은 탑을 쌓을 수 있어요 사위어 가는 사이의 모든 것들의 트랜스 오늘도 오지 않는 오늘.. 더보기
자작나무.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박정대] 미스터 션샤인의 말투로 말하겠소 햇살 좋은 아침이면 앞마당으로 나가 빨래를 너오 그곳에 돌배나무, 목련, 배롱나무, 자두나무, 살구나무, 사과나무, 생강나무, 이팝나무, 자작나무들을 심었소 자작나무에는 따로 이름을 붙여주었소 가난하고 아름다운 사냥꾼의 딸, 꽃 피는 봄이 오면, 자작나무 우체국, 레아 세이두, 장만옥, 톰 웨이츠, 김광석, 빅토르 최, 칼 마르크스, 체 게바라, 아무르, 아르디 백작, 상처 입은 용, 짐 자무시, 짐 모리슨, 닉 케이브, 탕웨이, 아르튀르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들, 이들은 가난하고 아름다운 나의 열혈동지들이오 돌배나무는 대낮에도 주먹만 한 별들을 허공에 띄우오 그 여름 폭풍은 내 마음속에 있었소 폭풍우 치는 낮과 밤을 동무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