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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탁배기 한잔.

 

 

 

 

 

 

 

무언가 버틸 것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그게 아이든 집이든 서푼 같은 직장이든

 

어딘가 비빌 데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아프가니스탄의 총소리도 잊을 수 있고

 

사막의 먼지 위에 내리는 눈 녹듯 잊을 수 있고

 

종군 위안부의 생생한 묘사, 아나운서의 침착한 목소리

 

아이 떼놓고 울부짖는 엄마의 넋나간 얼굴도, 창 밖으로

 

훌훌 털어버릴 수 있지

 

버스만 내리면, 이거 또 지각인가

 

손목시계 내려다보며 혀 끌끌 차며

 

정말 아무렇게나 잊을 수 있지

 

무언가 버틸 게

 

있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이지

 

특히 오늘같이 세상 시끄러운 날은

 

 

 

 

    - 최영미 시 '라디오뉴스' 모두

 

 

 

 

 

 

* 퇴근 길의 탁배기 한잔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요즘 세상의 시선이 불만이다.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면 요새 '주폭'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도,, 낯선 식당에서 반주삼아 술 한잔을 마셔도 예전과 달리 느껴지는 '주의깊은 시선'에 불편하다. 예전같이 옷을 잘 갖추어 입고 양주병을 기울이거나,, 제법 알려진 와인병을 따아야 '주폭'과 상관 없는 사람일까?!.... 가만히 실소 하면서 '따로국밥' 한그릇에 정구지를 듬뿍 넣고 모주를 한잔 가득 시킨다. 이 한잔이 내일을 또 버티게 해 준다. 세상의 술은 모두 조금씩 골고루 맛보았지만,, 탁배기에 넘칠듯 가득찬 막걸리 만큼 맛난 술은 없다. 언제 부산의 산성막걸리를 다시 구하면 두부가 맛난 범어사 버스정류장의 식당에서 벗들과 탁배기를 부딪고 싶다. 때론 한잔술의 몽롱한 힘과 조금은 내 허물을 쉽게 받아주는 벗들이,,, 나를 세상에서 버티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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