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불교의 선구자 |
"당신이 너무 바빠서 아이들, 아내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당신은 그들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사랑은 원할 때 곁에 있어주는 것이며, 그를 위해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거기 존재하지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정말 와 닿는 말이 아닌가. 우리는 종종 마음의 허함을 달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작업을 벌이곤 한다.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살아있는 인형, 강아지를 받아 들고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상기된 얼굴로 집으로 들어선다. 그리곤 매일 달라지지 않는 퇴근시간과 허겁지겁한 출근시간에 마르고 딱딱한 사료 한 접시를 후두둑 쏟아주고는 저 멀리서 사랑이 듬뿍 담긴 눈빛을 쏘며 안녕 바둑아~하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분명히 바둑이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도대체 나질 않는다. 하루종일 기다림과 외로움에 지친 바둑이는 아침만 되면 그의 사랑스러운 인사가 두렵다. 과연 이것이 사랑일까? 정말 틱낫한 스님은 대단하다.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은 이런 식이다. 그는 평온하게 말하지만, 현대인에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힌다. 아프고 쓰리다. 우리의 상처를 너무나 잘 꿰뚫고 있는 현대인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매달리려 하는지 모른다.
틱낫한 스님(77)은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살아있는 세계의 영적 스승으로 꼽힌다. 민족내부의 분쟁과 제국주의의 탄압 속에서 태어난 이른바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불교에 국한하지 않고 초교파적인 입장에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운동, 사이공측의 탄압에 대한 저항 등으로 정권의 미움을 사 1973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서양에 불교적 평화, 자비의 사상을 전해오다가 1982년 명상공동체인 '플럼빌리지'를 창설, 마음의 평화에 이르기 위한 수행을 전파하고 있다. 한자식 법명이 석일행(釋一行)이다. 베트남어 틱(Thich)은 석가의 석(釋)을, 낫한(Nhat Hanh)은 一行을 뜻한다.
틱낫한 스님의 이번 방한은 1995년에 이어 두 번째다. 2005년까지 미국, 유럽 등 여러 나라 방문일정이 꽉 짜여져 있었지만, 한국의 특수성에 공감하고 다른 일정을 미룬 채 우리나라를 찾은 것이다.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틱낫한 신드롬'을 일게 한 저서 <화>를 출판한 명진출판사측의 초청형식이지만, 그는 이번 방문에 아무런 대가없이 스스로 한국을 찾았다. 평화를 갈망하는 그에게 한국의 분단상황과 북핵문제, 대구지하철 참사 등 여러 요인들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며, 이로 인한 한국인의 짐과 굴레를 덜어주기 위해 방한한 것이라고 초청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틱낫한 스님은 19박20일 일정으로 한국에 머무는 동안 동행하는 승려 16명, 재가자 7명과 함께 <전국민 평화염원 걷기 명상>을 비롯해 20여건의 일정을 소화하며 평화와 상생, 자비의 메시지를 설파한다. 틱낫한의 철학은 그가 운영하는 수행공동체 플럼빌리지 곳곳에 적힌 문구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내딛는 걸음마다 평화, Peace is every step"
"어떤 씨앗에 물을 줄까" |
틱낫한은 내세나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중시한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이다. 현재의 삶 속으로 깊이 파고들수록 각자에게 더 많은 힘과 자유, 행복이 깃든다는 것이다. 스님의 가르침은 이른바 '씨앗론'으로 설명되곤 한다. 스님은 인간의 마음을 '밭'에 비유, "밭에는 기쁨과 사랑 등 긍정적 씨앗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 분노 등 부정적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열매를 맺을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사상을 말할 때 전제해야 하는 것은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의 창시자란 사실이다. "모든 불교는 다 삶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것이 핵심사상이다.
베트남에서 출가한 틱낫한은 젊은 시절부터 관념의 종교가 아닌, '민중의 고통을 덜어주는 종교'를 실천하기 위하여 사회운동을 벌여왔다. 그가 주창한 참여불교는 동양보다는 서양에 뿌리를 내려 서양에서는 표준 불교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큰스님'들 가운데 사회변화를 위한 조직적 활동에 경험과 조예가 가장 풍부한 사람이 틱낫한이라는 평가가 많다. 참여불교의 중심사상은 다음 6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모든 불교는 이미 참여하고 있는 불교다.
세상과 아무런 관련없이 세상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면 그건 이미 불교가 아니다.
둘째, 나는 '연결된 존재'라는 지혜다.
즉 나는 개별적인 내가 아니며, 개별적인 내가 공(空)하다는 지혜와 무상함은 참여불교의 수행과 평화창조의 근본이다.
셋째, 사회적으로도 참여하는 불교다.
사회적으로 참여하는 불교수행에는 깨어있음(正念)의 수행과 사회 봉사와, 불의를 줄이고 멈추기 위한 비당파적인 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꺠어있는 마음으로 걸을 때 행복은 우리 곁으로 |
넷째, 참여불교는 우리가 삶을 사는 법이다.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다. 평화란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행(行)에 다 포함되어야 한다.
다섯째, 가르침과 수행은 시대와 지역에 합당해야 한다.
여섯째, 우리는 쉬지 않고 배우며 또한 모든 것으로부터 다 배워야 한다.
틱낫한 스님이 강조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깨어 있는 마음(mindfulness)'이다. 깨어있는 마음을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틱낫한 수행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련법은 ◇ 걷기명상 ◇ 호흡명상 ◇ 종명상 ◇ 식사명상 ◇ 일명상 ◇ 차명상의 6가지로 나뉜다. 플럼빌리지에서 그가 손수 실천해보이는 수련들이다. 이를 통해 틱낫한 스님은 수백가지 메시지를 전해준다. 그 중의 하나는 평화와 힘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말한다. "내 마음의 평화가 우주 만물의 평화를 이룬다" 고.
영적 오아시스 자두마을 |
플럼빌리지(Plumvillage)는 틱낫한 스님이 사는 곳이다. 그가 직접 참여하는 대규모 수행이 여름과 겨울에 각각 한달 가량 열리는데, 외부인은 최장 3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다. 주말마다 상시 운영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곳은 '영적인 오아시스'라고도 불린다. 국가,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각자의 믿음에 따라 마음의 평화를 찾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수행법인 '위파사나(Vipasana)'를 대중화한 형태로 일반인들을 파고 들어갔다.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나는 느낀다. 내가 살아 숨쉬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임을.."이란 틱낫한 스님의 말을 통해 그 실체를 엿볼 수 있다. 플럼빌리지는 프랑스 남서부 포도주로 유명한 보르도에서 100㎞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은 윗마을, 아랫마을, 새마을 등 세 개의 마을로 이뤄져 있다. 1982년에 처음 땅을 매입할 때 한 곳에 큰 땅을 구할 수 없어서 걸어서 40분 정도 떨어진 두 곳에 윗마을(Upper Hamlet)과 아랫마을(Lower Hemlet)을 매입했다. 이후 새마을(New Hemlet)이 생겼다. 수련회 때 남자들은 주로 윗마을, 여자는 아랫마을과 새마을에 머문다. 부부는 어디서나 숙박 가능하다. 수련자들은 발음하기 힘든 틱낫한 대신 그를 '태이'라고 부른다. 태이(Thay)는 베트남어로 '스님'이나 '선생님'이란 뜻이다.
틱낫한을 알고싶다 |
틱낫한 스님을 일러 세인들은 '어린 왕자와 시인과 관세음보살을 합쳐놓은 것 같은 스님' '구름과 달팽이와 불도저를 합쳐놓은 것 같은 스님'이라 부른다. 이는 구도자로서의 견결함과 자비를 실천하고자 하는 수행자로서의 품격을 갖춘 스님을 비유한 말로써, 동양과 서양을 아울러 존경을 받고 있는 스님의 성품을 잘 보여준다.
참여불교를 주장하는 스님은 그 실천으로 반전 평화운동에 몰입하였다. 베트남 전쟁의 난민과 부상자를 돕기 위한 사회청년봉사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전쟁의 뿌리가 미국에 있다고 판단해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반전평화운동을 펼쳤다. 그는 선불교 승려지만, 시대를 앞서 초교파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1960년대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그의 미국순회강연회를 주선하고 도와준 사람들은 평화운동에 참여했던 카톨릭 신부들이었다. 1967년 노벨평화상에 추천한 이도 다름 아닌 마틴 루터 킹 목사!
베트남 전쟁 중, 불교평화대표단 의장으로 파리평화회의를 이끌면서 보여줬던 평화를 위한 굳은 의지와 솔직한 표현들이 베트남 정부와 대립적인 시각으로 비춰지면서 고국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것을 금지 당했다. 1973년 프랑스로 망명한 스님은 1975년 파리근교에 명상공동체인 <스위트 포테이토>를 설립하고 '시대가 변하고 대중이 달라지면 종교도 달라져야 한다'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이런 소신은 1982년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 명상수련센터인 <플럼빌리지>를 세우면서 더 확실하게 표출되었다.
'영적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플럼빌리지는 전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인종의 벽을 허물고 마음의 평화를 위한 수행에 전념하는 곳이다. 이들의 얼굴에는 정말 웃음이 떠나지 않고, 형제애와 관용, 기쁨이 넘친다. 이런 기쁨으로 자신을 채워나가는 틱낫한 스님은 현대를 살아가는 외롭고 지친 영혼들의 마음에 평화가 깃드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누리고자 해마다 미국, 유럽, 아시아의 세계를 순회하신다. 스님의 약손은 고통에 가득 찬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지기만 해도 깨끗이 씻어줘 버린다.
아마도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특히 기독교 문화가 지배적인 서양에서조차 틱낫한 스님이 영적인 지도자로 존경받는 이유는 스님이 가진 초월적인 사상과 세속적 실천이라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설득력 있고도 합리적인 삶의 지침을 일러주기 때문 아닐까? 내부적 바탕을 굳건히 하면 자연스럽게 외부적으로 표출되듯이 마음의 밭을 가꾸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야 말로 변하는 시대에 알맞은 '나를 위한 평화론' 아닐까?
틱낫한 저서 |
베스트셀러 <화>가 현대인의 상처를 어루만져 줬다면, 신간 <힘>은 현대인에게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진정한 힘을 무엇인지, 왜 깨어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깨어있는 마음이 어떻게 힘이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깨어있는 마음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담고있다. 특히 <힘>은 한국방문에 맞춰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기획 출간한 것으로 미국은 2005년 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국내 서점가에 틱낫한 스님바람이 인 것은 세계적으로 전운이 감돌면서 평화와 화합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스님의 행적이 돋보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스님의 책이 각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얻는 지혜'를 선사한 것도 큰 몫 했다. 또한 불교도가 많은 한국인들에게 기존의 불교책과 달리 불교의 진리를 알기 쉽게 풀어 쓴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섰다.
Power 힘
이번 한국방문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된 그의 최신 작품이다. 진정한 마음의 힘이 어디에서 솟아나는지를 잔잔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Anger 화
부처는 시기, 절망, 미움, 두려움이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독이며, 이 독들을 하나로 묶어 <화, Anger.라고 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자상하게 일러준다.
My Master's Robe 내 스승의 옷자락
불가에 입문해서 수행하던 사미승 시절인 20대 후반에 쓴 책으로, 1942~1947년에 걸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평화로움을 잃지 않았던 그의 산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의 평화 얼굴에는 미소
틱낫한 스님의 저서 20여권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명상서적을 가려 뽑고 번역하는데 일가를 이루고 있는 류시화씨가 작업했다.
Cultivating the Mind of Love 틱낫한의 사랑법
한 여성을 사모한 그의 첫사랑 이야기. 사랑의 아픔과 거친 감정의 파도,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수행을 바탕으로 삼은 그의 진솔한 이야기다.
The Miracle of Mindfulness 거기서 그것과 하나 되시게
모두 여덟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한결같이 '지금 여기를 살라'고 가조한다.
Call Me By My True Names 부디 나를 참이름으로 불러다오
유일한 시집. 100여 편의 시에 지난 40여년간 그가 체험한 전쟁, 인간과 세계와 자연의 황폐화, 명명생활의 쓰라림 등이 배어있다.
Being Peace 틱낫한의 평화로움
미국 버몬트와 플럼빌리지를 오가며 강연과 명상수행을 지도한 내용이 담겨있다.
Touching Peace 마음을 멈추고 다만 바라보라
'멈추어 고요하기'와 '깊게 꿰뚫어 보기'라는 불교명상의 두 가지 원리를 손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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