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월급은 많지 않아도 너무 늦지않게 퇴근할수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 이였으면 좋겠다.
퇴근길에 동네슈퍼 야채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쳐 '핫'하고 웃으며
저녁거리와 수박 한통을 사들고 집까지
같이 손잡고 걸어갈수 있었음 좋겠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날 있었던
열받는 사건이나 신나는 일들 부터
오늘 저녘엔 뭘 해 먹을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고
들을수 있는 사람 이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들어가서 같이 후다닥 옷 갈아입고 손만씻고,
한 사람은 아침에 먹고 난 설겆이를 덜그덕 덜그덕하고
또 한사람은 쌀을 씻고 양파를 까고
"배고파~" 해가며 찌게 간도 보는
싱거운 사람이였으면 좋겠다.
다 먹고나선 둘 다 퍼져서 서로 설겆이를 미루며
왜 니가 오늘은 설겆이를 해야 하는지,,,
서로 따지다가 결판이 안 나면 가위바위 보로
가끔은 일부로, 그러나 내가 모르게 져주는,,,
너그러운 남자 였으면 좋겠다.
주말 저녘이면 늦게까지 TV체널 싸움을 하다가
오 밤중에 반 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약간은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같이 비디오를 빌리러 가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것 없이 뛰어가
떡볶이에 오뎅국물을 후룩후룩~
'너 더 먹어~" "나 배불러~" 해가며 게걸스럽게 먹고나서는
비디오 빌리러 나온 것도 잊어버린 채
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가끔은 나처럼 단순한 사람 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땐 귀찮게 부지런 하기도 한 사람이였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침 잠에 쥐약인 나를 깨워 반바지 입혀서
눈도 안떠지는 나를 끌고 공원으로 조깅하러 가는
자상한 사람 이었으면 좋겠다.
오는 길에 베스킨 라빈스에 들러
피스타치오 아몬드나, 체리 쥬빌레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콘을 두 개 사들고
"두개 중에 너 뭐 먹을래?"
묻는 사람 이였으면 좋겠다.
나처럼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를 닮은 듯 나를 닮고 날 닮은듯 그를 닮은 아이를
같이 기다리고 픈 그런 사람 이였으면 좋겠다.
아이의 의견을 끝까지 참고 들어주는
인내심 많은 아빠가 될수있는 사람이였음 좋겠다.
어른이 보기엔 분명 잘못된 선택 이여도
미리 단정하여 말하기 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줄수있는 사람,
가끔씩은 약해지기도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아이들이 잠든새벽 아내와 둘이 동네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소주 따라놓고 앉아
아직껏 품고 있는 자기의 꿈 얘기라든지
십 몇년을 같이 살면서도 몰랐던
저 깊이 묻어 두었던 이야기들을,,,
아침 눈가에 주름잡힌 아내와 두런두런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사람 이였으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 이였으면 좋겠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가는 사람,
술자리가 이어지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할 줄아는 사람.
내가 그의 아내임을 의식하며 살듯,
그도 나의 남편임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사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 이였으면 좋겠다.
-출처;아름다운 통화님 미니홈피, 2004.12.07.심 민영씨 전체 공개글 중에서 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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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각박하고 어려울수록 가정은 최후의 안식처이자 삶의 아품을 치유할수 있는 장소이어야 한다. 20 여년에서 30 여년을 따로 자라 서로의 선택에의해 부부의 연을 맺는 우리들,,, 생각해 보면 눈물 겹다. 젊은 날의 소망과 정열을 하나하나 유실한채 현실의 파고에서 서로의 모습을 되새기며 그래도 당신만은 하는 마음도 때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조금 후에는, 좀더 나아지면,,,
-어느 벗님의 홈피에서 이글을 발견하고 참 많이 생각했다. 젊은 날의 사랑과 정열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타성에 젖어 습관처럼 아내를, 가족을 사랑한다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삶의 괴로움과 세상의 유혹에 가끔은 약해지는 나를 느끼며 이런 나를 말하지 못하고 의젓한척, 떳떳한척 하며 남편으로서의 체면과 아빠로서의 권위만을 아이들에게 내세우지는 않았는지,,,내 잘못과 오류로 빚어진 잘못된 결과에도 이를 인정치 못하고 타인의 잘못과 일처리 때문이라고 책임전가한 많은일들,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내 자신을 정당화하지만 때로는 비겁 했음을 자복한다.
-주위의 젊은 이들에겐 나는 이미 아저씨,, 때론 오빠라고 부르라 회유하지만 "왝" 이란다. 아 상처받은 자존심,,,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 밝고, 맑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금전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진 못해도 나눌수 있는 마음을 지녀, 다가오는 다가가는 벗들에게 서로 나눌수 있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길 소망한다.
-글을 공개상의 블러그에 쓰면서 내 자신에게 부끄러운 글은 쓰지 말자고 다짐 했었다. 09.14.로 부터 지금까지,,, 부끄럽지만 가감 없는 내 삶의 기록들, 인생은 외로운 것이고 때로는 가족과 친구에 둘러 쌓여져 있어도 고독은 나에게 온다. 내가 깨어있어 살아내야 하는 순간 순간들,,, 누가 뭐라해도 내 인생을 살자고 당연한 다짐을 되내이는 나는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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