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달도 뜨지 않았는데
멀리 마을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가
화장장 높은 굴뚝을 휘감아 돕니다
오늘도 부지런히
세 분의 시신을 돌보아 드렸읍니다
부러진 뼈를 맞추고
상처를 꿔매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수의를 입혀
고요히 화장장으로 옮겨드렸읍니다
교통사고로 훼손이 심한 한분은
짚으로 한쪽 다리를 만들어 관속에 넣어드리자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이셨읍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유골함을 받아들고
울먹이던 유족들은 이제 보이지 않읍니다
아마 가까운 식당에서
유골함을 옆에 둔 채 갈비탕을 먹거나
빈 속에 술을 마시며
인생을 미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얼음이 많으면 강물이 많듯이
저는 죄가 많아 눈물도 많읍니다
언제나 한마리 짐승에 지나지 않았던 저는
늘 지옥말고는 갈 데가 없었읍니다
죽은 고래보다
살아있는 한마리 피라미가 더 중요하다고
천년을 함께 있어도 한번은
이별해야 한다고
포장마차의 흐린 불빛에 기대어
동료들과 몇잔의 소주를 들이켜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
오늘 돌보아드렸던
그분들처럼
저도
쓸쓸히 종점에서 내립니다
-정호승시 '시립화장장 장례지도사 김씨의 저녁'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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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바쁜일을 끝내고 신문을 펼치니 두 사람의 죽음 기사가 가슴을 친다. 한사람은 30 이 넘어 한참
일할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버렸고, 한 사람은 9살 한창 부모의 사랑속에 이골목, 저골목을 뛰어 다니
며 성장 해야할 어린소년.., 세상의 그 무엇이 그들을 쓸쓸한 그길로 데려간 것일까?
농사를 짓고, 농촌 지도자로서 많은 계획이, 농촌현실의 뼈아픈 자각과 진행사항들이 그의 숨을 옥죈
것은 아닐까.., 그래도 그의 죽음엔 그와 뜻을 함께했던 많은 이들의 발길과 눈물이 있는데 ..., 부모
의 이혼으로 홀로되어 외롭게 홀로 생활하다 처참하게 죽음으로 내몰린 외로운 소년의 죽엄에는 기
자들만 북적일분 아무도 없다. 엄마도 아빠도..,아무도,
자살을 생각 하기까지 많은 날들을 괴로와 했을 마을 이장이자 30대 대학생농부 정씨(38세)..,
초등학교 3학년 어린나이에 "...앞일을 생각해야 한다. "라는 글을 쓰며 그래도 살려고 애쓰던 권군(9
세) 어른의 한사람 으로서 정말 미안하다.., 부디 그곳에서는 외롭고 무섭지 않으며 따스하기를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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