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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비오는 날의 인사.

비가,, 적신다.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나이를 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잊은 채로 당신의 나라에 와버렸고
잊은 채로 당신의 학교에까지 와버렸습니다
팔짱을 끼고 독수리상을 지나서 좀 왼쪽으로 올라가면
당신의 비석이 서 있습니다
당신의 나이를 넘은 제 삶을
여기에 옮긴 것은 옳았던 것인지

"여기는 윤동주 선배님의 조용한 안식처입니다. 담배 꽁초를 버리지 맙시다."
오늘은 비가 지독하고
팻말은 풀숲 속에 쓰러진 채 비에 젖어 있었지만
후배들은 여기서 담배 따위는 피우고 있지 않아요
여기 올 때마다 조그마한 꽃다발이 놓여 있습니다
"시인이 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라고 일본의 한 뛰어난 여성시인이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은 저희 어머니의 시대 할머니의 시대입니다
저는 당신의 종점으로부터 걸어왔습니다
언제나 종점으로부터 출발해왔습니다
이제 폭풍우는 우상을 뒤집어서
저는 당신의 말 앞에 서 있습니다
실현될 때 말은 빠릅니다
빛처럼 실현될 때
말은 운명입니다
약속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 지상에서
녹지 않는 별의
그 딱딱한 눈동자의 빛에 비추면서
저의 부끄러움과 당신의 부끄러움은
서로 얼굴을 맞을 수 있는 것인가요

비가 그치면
"사람이 되지"라 대답한
수없는 당신의 동생들이
뛰어다니는 이 대학가 상공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최루가스가 자욱하게 있습니다


- 사이코 마리코, 봄날의책,2018.



** 문득, 누군가 ‘그리워‘ 지는 9월, 비는 내리고 ’한 사내‘가 문득 그리워 집니다. 사이코 마리꼬 의 시 한편을 덧붙이며 ‘윤동주 시인’을 기억합니다. 그가 미처 다 쓰지 못한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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