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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오래전,, 부산의 할매국밥




한동안 점심으로 따로국밥만 먹은 적이 있었다

골목안의 그 식당은 언제나 조용했다
어린애 하나 데리고
언제나 방안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느릿느릿 차려주는 쟁반 밥상을
나는 수배자처럼 은밀히 찾아들어 먹곤 했다
밥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의 그 적요가
왠지 나는 싫지 않았다

한번은 직장 동료와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을씨년스레 식은 드럼통 목로들을 둘러보며
그가 추운 듯 그 적요를 어색해 하는 것을 보곤
이후 죽 혼자만 다녔다

가끔씩 국이 너무 졸아들어 짜진 것을 빼고는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채 언제나 적당히 젖어 있던
그 낡은 적산가옥의 쓸쓸한 흙바닥까지 나는
사랑하였다

그 식당이 결국 문을 닫고
아이와 함께 늘 어두운 방안에 웅크리고 있던 여자가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 집수리가 시작된 철거현장에서
나는 어린 딸아이의 끊임없는 웅얼거림과 가끔씩
덮어주듯 나직이 깔리던 젊은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허물어져 가는 회벽 사이에서 햇살에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눈이 부셨다



- 엄 원태 시 ‘골목안 국밥집’모두
*시로여는세상, 2014 가을호




* 맛집을 찾으려면 차들이 많이 주차해 있고 사람이 많은 식당을 들어가면 후회가 없다는데,, 이식 후에 다시 투석을 시작하면서,, 솔직히 입맛을 잃었다. 일년이 다 되어서야 삶의 방향을 바로 잡고 투석에 적응하여 지금은 3년차 이지만 여전히 두려운 바늘에 대한 몸의 기억은 아직도 ‘눈’을 질끈 감게 한다. 투석인의 삶을 이어 가려면 체력이 기본이고 무엇보다 ‘끼니’를 잘 챙겨야 한다.

코로나19 이후로, 새벽 투석후에 끼니를 채우려니 오전 10 시를 기준으로 문을 여는 식당이 드믈어 졌다. 24시간 영업을 하던 식당도 일찍 열어야 Am 07시, 평균적으로 11시나 되어야 식사가 가능하니, 자연스럽게 순대국, 곰탕, 해장국, 설렁탕, 육계장, 소머리곰탕,,, 이런 탕 종류가 화, 목, 토요일 하루의 주 메뉴가 되었다.

이제는 병원 근처의 육계장, 소머리곰탕, 설렁탕 집이 병원에서 10분 내에 갈 수 있는 집이라 ‘단골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원래 복작 거리고 사람이 많은 식당이나 10시 이전에 도착하면 하루의 개시 손님인 경우가 제법 많으니,,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다. 그래서 혼자서 국밥을 먹다보면,, 너무 손님이 없어 다음 사람을 기다리는 ‘적요’를 경험 하기도 한다.

사무실 근처의 작은 밥집이나 제법 큰 식당도 때로 ‘임대문의’나 ‘임시휴업’을 붙이거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라고 붙인 식당도 많아서 늘 가던 식당은 이 어려움을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이 된다. 하루에 두끼,, 일주일에 3번을 투석 하면서 꾸준히 컨디션을 유지하며 일하고 먹고 살려면 건체중에 +3kg 을 유지 하는게 내겐 중요함을 알았다. 3kg을 오버 하여 투석하여 건체중을 맞추면, 쓰러질 듯이 하루가 힘이 들었다.

투석 이후로,, 항상 갈증에 목이 마르고 배가 부르게 먹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더 먹고 싶다” 하는 순간에 참는것이 왜 그리도 어려운지… 한 여름인 지금은 콩국수나 냉면의 유혹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식욕이 인생에서 아주 커다란 유혹임을 깨달았으니,, ㅎㅎ,, 나중에 몸애서 ‘사리(?)’라도 나올까나…, 나 역시 소상공인의 한 사람으로서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식당 주인에게 “ 잘 먹었습니다. 많이 파세요” 하고 주문을 외듯 말하고 ‘이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부디 문닫는 일은 없기를 기원한다.


결국엔,,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것이다!



* 좋아하는 여배우 ‘쥴리아 로버츠’의 2010년도 영화제목을 인용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