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내가 살아 보니까
남들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더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에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더라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의 마음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더라
* 장 영희 저,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에서
위 책의 저자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2009년 만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故 장영희 교수입니다.
인터넷에 자주 인용되는 글귀 (내가 살아보니까)는 위 책의 내용중 일부로서 깊은 감명을 주고 있어 소개합니다.
1952년 생인 그녀는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에 걸려서 평생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싸워야 했습니다. 입학시험 조차 보지 못하게 하는 대학들의 차별의 벽에 막힌 부친이신 故 장왕록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께서 던진 질문에 서강대 영문학과 학과장 브루닉 신부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는 것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되서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친 그녀에게 국내 대학들은 다시 한번 박사과정 입학 허가를 꺼렸습니다. 그녀는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 1985년 뉴욕 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를 취득하였습니다. 그 해 귀국한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24년 간 모교인 서강대학교의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시련은 장애인으로서의 생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001년에는 유방암,
2004년에는 척추암이
그녀를 엄습했습니다.
굳은 의지로 이를 모두 이겨낸 그녀는 2008년 다시 찾아온 간암은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2009년 5월 생을 마감했습니다.
* 근래에 까페의 ‘익명방’의 댓글을 읽다가 ‘울컥함’이 올라와, 참 마음이 좋지 못하여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몸이 너무 아프면 마음도, 말도, 글도 가시를 품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같은 시대를 살아 오면서 유일하게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고) 장 영희 교수의 글을 다시 옮겨 봅니다. 마음의 미움을 내려놓고 모두들 서로를 ‘용납’하는 신환우들 이길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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