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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다시 읽는 시 몇편 - 신 혜정 시인.

시인은 참 쓸쓸한 사람이란 느낌…






*라면의 정치학 / 신혜정

현대는 엑기스 시대다
정보의 집합체에 접근하기
혹은 접근 금지의 아고라에 모여들기
농축이 아닌 것들은 천대 받는 시대

젊음은 치기라는 농축 엑기스의 집합체로
술을 마셔도
연애를 해도
미친 듯이,
미칠 듯이
객체와 영혼의 융화를 이루어내는

라면은 현대 식문화의 집대성으로
영양학자와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들이 만들어내는
정치적인 이슈는 스프 속에 감춰진 비밀 레시피
소고기맛 베이스
지미강화육수분말
햄맛분말
향미증진제
돈골엑기스.......
엄청난 살육의 엑기스를 분말로 만들어내는
물리학의 기적

팔팔 달아오른 냄비는 뜨거운 욕망을 탄생시키고
한 번의 사용을 위해 가지런히 포장된 비닐봉지는
원 나잇 스탠딩
구깃구깃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부패되지 않은 것들을 양산하는 현대의 문명은
한 끼 식사에 30분을 소비하지 않는다

냄비가 끓었다면
이제 곧 먹을 차례다

정치적인 핵심과 이슈들이 퉁퉁 불기 전에
초스피드 배후설을
완성할 차례

역사나 문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것은
활자처럼 찍혀
좌우로 팔려나간다



*마음의 집 - 신 혜정


먼 곳에서 안부가 도착합니다
사방이 막힌 이곳은 그러나 투명합니다


당신의 안부는 조명처럼 너무 환해
잠깐 눈을 감습니다


동공이 수축되기를 기다리며
시간이 조금 흐릅니다


눈앞에는 모두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
그것들은 반짝입니다
쇼윈도에 걸린 마네킹처럼
나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그리운 이의 번호를 눌렀는데
없는 번호라고 나올 때의 배신감처럼
닿는 자리마다 녹아 없어지는
그러나 이곳은 투명합니다
투명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바람에 얼음 알갱이들 실려옵니다
어쩌면 비로소 당도한 모래의 말일지도 모릅니다


잘 지내십니까?
몰래 썼던 일기장을 나는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막힌 이곳에서 내 일기는
잘 전시되고 있습니다


시리고 투명하던 마음
닿은 자리마다 녹아내리던 당신의
안부가 켜집니다


가만히 백야의 해가 뜹니다
진 적도 없는데 다시 뜹니다 마음처럼
가려는 곳에 기어이, 햇살이 다가갑니다




*참 이상도 하지 - 신혜정



열무김치에
고추장 넣고
슥슥 밥을 비비다가
문득
목이 메는 것처럼 말이야
칼칼하고 쌉쌉한 고추장맛
얼얼한데
고게 자꾸 입맛을 당겨
된 밥에 물도 안 먹고
가슴에 얹히도록
볼이 미어지도록
먹다가도
돌 씹은 것처럼 문득
느껴지는 이물감, 그게
살아 있다는 건가?
문득 살아 있다는 게
서걱서걱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데
이상도 하지
고여 있던 몸
활기차게 키질 하듯
기지개를 켜는 것은
가슴 얹히도록 밥을 먹다가
냉수 한 사발 들이켜듯
다음 생을 위해
우주가 움직이는 것은
참 이상도 하지
나고 죽는다는 것 말이야
고게 자꾸 입맛을 당겨



*카라멜 마끼아또* / 신혜정



층층이 쌓아 놓은
부드럽고 달콤한 유혹

눈 내리는 버스 안에서
이국적이고도 우아하게
서울의 교통 체증을 즐기며

손에 든 생각들이
식어빠져
들척지근하게 될때까지

너를 생각하다가

어느 것이
생크림이었는지 커피였는지
무시로 녹아
확인할 길 없어질 때

너는 이미 없고
시작을 알 수 없는 추억들
다만 진눈깨비처럼
창에 부딪힐 때

우아한 첫눈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는

하얗고 달콤한 유혹
뒤에는 언제나
응고되지 않은 생각들

질척거리는 결말은 언제나
달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원액, 우유에 카라멜 시럽과 휘핑크림을 얹은 달콤한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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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는 일은 조심 스러우면서도 읽는 재미가 있다. 그들이 느꼈던 고통이나 아픔이 삶의 회한이 동감이 가면서도, 혹시나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글자의 압축이나, 언어의 초기화, 상징이나 새로운 표현과 과감한 생략,,, 솔직한 직구같은 뼈때림이 상쾌하기도 하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언제나 솔직하고 바른 말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시인으로 글을 쓰는 순간만은 언제나 젊고 ‘청춘’이다.


삶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새로움을 배우고 깨우칠 수 있음으로 새로운 날들이 고맙다.

* 까페에 올려놓고 블로그에 옮겨 놓기를 이제야 한다. 여기저기 적어 놓고 잃어버린 글들이 제법 많다. 이제는 쓰는 것을 멈춰야지 하는 생각,, ‘부질없다’ 란 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