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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는 이야기

다시 읽는 공광규 시인의 시,, 몇 편.

사는게,, 무지개 더라,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그늘 수십평과 까치집 세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 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엔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방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 꽃이 하얗게 덮인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다니는 하루 수백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청태산까지 나의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


- 공 광규 시 ‘담장을 허물다’모두
- 『담장을 허물다』(창비, 2013)




멀리 순항하던 비행기가
갑자기 비상착륙을 하려면
항공유를 모두 버리고 무게를 줄여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안전한 착륙을 위하여
정상항로를 벗어나서
비싼 항공유를 모두 바다에 버리고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
갑자기 자신을 비우고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있다.


- 공광규 시 '아름다운 회항' 모두




바위와 바위가 기댄 암문을 거쳐야
암자에 오를 수 있다
암문은 좁고 좁아서
몸집이 크거나 짐이 많은 사람은
통과 할 수가 없다
꼿꼿한 허리도 굽혀야 하고
머리를 푹 수그려야 할 때도 있다
가끔은 무릎걸음도 해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게 올라가도
바위가 막아서고 사철나무가 막아서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야 한다
대웅전에서 해우소 가는 길도 그렇고
상관음전과 하관음전 가는 길도 그렇고
산신각 가는 길도 그렇다
비가 오면 우산을 접어야 한다
이건 분명 부처님의 기획이다
오늘은 비가 와서
비를 맞으며 바위 문을 통과했다
빗방울이 나를 밟고 활엽수에게 건너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산이 뒤척이며
파도 소리 법음을 내고 있다.


- 공광규 시 '향일암 가는 길' 모두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비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나무문살 꽃무늬단청 스치는 바람소리를
냅니다


- 공 광규 시 ‘무량사 한 채’모두
* 시집 『말똥 한덩이』(실천문학사, 2008)




내가 시시해졌다
부동산, 재태크, 조루증 상담
이런 광고들에 눈이 쏠린다

마음으로 하는 사랑
숨어서 하는 연애
남몰래 하던 외도
무덤까지 묻고 가기로한 은밀한 상처도
긴장이 풀렸다

아찔한 계룡산 능선이나
북한산 바위 절벽
거가 매달려 있는 소나무를 보고
이제는 위험하다는 생각보다
운명이라 생각을 한다

그러니 나는
분명히 타락했다
이런,
마흔에 순결이 구겨지다니

절벽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다시.
절벽으로 올라가야 겠다

- 공 광규시 ‘절벽’모두



평생 할 줄 아는 것이
뱀 구멍과 마누라 거시기 파는 것이었다는
뱀통 메고 산기슭 떠돌다가 벼락 맞아 죽은 땅꾼의
버려진 산소에도 잡목이
정수리까지 박혀 쓸쓸하다.
친구도 친구 자식도
다시는 돌아올 일이 없을 것 같아 울먹해지는
이민 간 친구 빈집 마루에 가득한 흙먼지
병을 얻은 친구의 홀아버지는
읍내 큰아들 집에 구들을 지고 누워 있단다.
어머니가 걸어서 시집왔다는 고개는 파헤쳐지고
개울 건너
경순네 빨간 함석지붕은 헐려 보이지 않는다.
지초실 종기네 민구네 옛집도
눈이 흐려 분간할 수가 없다.
교회당 사모는 도시로 떠나고 싶다는 소문이 돌고
젊은 여자의 팔 할이 다방아가씨란다.
겉늙은 내 시골 동창과 살던 다방아가씨는 도망쳤고
방앗간집 며느리 셋도 다방아가씨였는데
농자금을 털어 모두 집을 나갔다고 한다.
소고개 넘어
잘생긴 스님 하나에 보살이 셋이나 되는
된장 고추장을 많이 담아 장독이 많은 새 절 법당에는
벌써 죽은 시골 동창 사진이
빙그레 웃고 있다.
꿀벌이 분주한 재당숙네 마당을 지나
오십 중반에 폐가 무너진 아버지가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퉤퉤 가래침을 뱉으면
뒤꼍에 있던 닭들이 겅중겅중 달려와
가래침을 맛있게 주워 먹던 옛집.
마당에 파도처럼 쓰러진 망초꽃대를
마구 밟아보다가
무너진 측간 똥독을 들여다보다가
쥐똥과 새똥이 범벅된
썩은 마루에 앉아 옛날을 생각한다.
나도 돈돌배기에 누운 아버지 나이가 되려면
십 년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다가
무능하고 어린 처자식들을 생각하다가
이내 마음이 서러워져
억새 엉엉 우는 산소에 넙죽 절을 한다.


- 공광규 시 '엉엉 울며 동네 한바퀴' 모두
(시집『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대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속을 더 크게 비워가고
오래된 느티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썩히며 텅텅 비워간다
혼자 남은 시골 흙집도 텅 비어 있다가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다

도심에 사는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머리에 글자를 구겨 박으려고 애쓴다
살림집 평수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친구를 얻으려고 술집을 전전하고
거시기를 한 번 더 해보려고 정력식품을 찾는다

대나무를 느티나무를 시골집을 사랑한다는 내가
늘 생각하거나 하는 짓이 이렇다
사는 것이 거짓말이다
거짓말인 줄 내가 다 알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다
나를 얼른 패 죽여야 한다.


- 공 광규시 ‘거짓말’모두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고
새끼 두 마리가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다

먹이를 구하다가 지치고 병든
컹컹 우는 암사자를 업고
병원으로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 공 광규시 ‘아내’모두



읍내 술집을 전전하다가
늦은 밤에 빈 고향집을 찾아가는데
옆집 개 짖는 소리도 반갑고
멀리 보이는 이웃 불빛도 따뜻하다

아궁이에 불을 넣고
빈방 무서움을 견디며 잠들 무렵에는
시끄럽던 풀벌레 소리도
옆집 늙은 부부가 다투는 소리도 정겹다

이제 고향집에 늙은 어머니마저 없으니
수돗물도 끊기고
따뜻한 쌀밥도 국도 반찬도 없다
고향에 오면 국물도 없는 인생이 된 것이다

마른 빵을 뜯어먹다가
먼지가 쌓인 낡은 녹음기 단추를 누르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목탁 소리에 실린 예불문이 처량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아득한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는 수십 년을 혼자 울었을 것이다
혼자 고독에 울다 위가 굳어
폐목으로 쓰러진 것이다.

- 공 광규시 ‘빈집’모두



오늘은 아내가 없이 밥을 먹네
된장을 끓이고 오래된 반찬을 내놓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네
집나간 아내를 욕하면서 걱정하면서

결혼은 삼겹살을 굽는 것이네
타지 않게 골고루 잘 익혀야 하는 것이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게 불꽃을 조절하고
알맞게 익도록 방심하지 않는 것이네

결혼은 된장국을 끓이는 것이네
알맞은 양을 물에 풀고
양념을 넣고 자꾸자꾸 간을 보는 것이네
된장과 양념의 조화를 맞추는 것이네
그걸 몰라서 아내가 없이 밥을 먹네
된장을 끓이고 오래된 반찬을 내놓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네
집나간 아내를 욕하면서 걱정하면서.


- 공 광규 시 ‘부부론’모두



* 공 광규 시인의 시를 읽더보면 내 이야기를 하는 둣 하여 귀를 붉히곤 한다. 사람사는 세상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그리고 내 욕심이 한웅큼이다.
삶에 정직하여야 하는데 한눈은 감고, 오른손으로 일을 하며 왼손으로 모르게 한 일들이 좀,, 많던가!? 시인들의 시집을 읽다보면 세상을 산다도 하면서 스스로 정당화하여 감추었던 숨겨둔 내 모습들이 생각나 부끄럽다. 언제, 인생앞에 겸손히 고개숙여 질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