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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 쓸쓸한 영혼

‘슬픈, 인간의 날개‘ - 천 상병 시.

힘차게, 날.아.라.







―도끼가 내 목을 찍은 그 휠씬 전에 내 안에서 죽어간 즐거운 아기를 (장주네)





골목에서 골목으로
저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詩人의 보람인 것을…… .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 순하기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莊嚴)하다.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 양
밤은 깊어 가는데
할머니 등 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겨울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 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아기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


- 천 상병 시 ‘주막에서’
[酒幕에서], 민음사,1979.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박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되 사면
한 홉짜리 작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은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째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 최대 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알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인 것이다


- 천 상병 시 ‘막걸리’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 천 상병 시 ‘나무’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 천 상병 시 ‘편지’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 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천 상병 시 ‘새’
* 주막에서(천상병 시선집), 민음사 1979.





심통(心痛)한 바람과 구름이었을 게다, 네 길잡이는
고단한 이 땅에 슬슬 와서는
한다는 일이 가슴에서는 숱한 구슬
입에서는 독한 먼지
터지게 토(吐)해 놓고,
오늘은 별일없다는 듯이
싸구려 관(棺)속에
삼베옷 걸치고
또 슬슬 들어간다.
우리가 두려웠던 것은
네 구슬이 아니라
독한 먼지였다.
좌충우돌의 미학은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드디어 끝난다.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려 기뻐해다오.
김관식(金冠植)의 가을바람 이는 이 입관(入棺)을


- 천 상병 시 ‘ 김관식의 입관(入棺)‘




가지에서 가지로
나무에서 나무로
저 하늘에서
이 하늘로,

아니 저승에서 이승으로

새들은 즐거이 날아 오른다.

맑은 날이나 궂은 날이나
대자대비(大慈大悲)처럼
가지 끝에서
하늘 끝에서......

저것 보아라,
오늘 따라
이승에서 저승으로
한 마리 새가 날아 간다.


-천상병시 '새'전문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졸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 듯이 안 보일 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3월 4월 그리고 5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천상병시 '푸른 것만이 아니다'전문





가도 가도 아무도 없으니
이길은 무인의 길이다.
그래서 나 혼자 걸어간다.
꽃도 피어 있구나.
친구인 양 이웃인 양 있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꽃의 생태여
길은 막무가내로 자꾸만 간다.
쉬어 가고 싶으나
쉴 데도 별로 없구나.
하염없이 가니
차차 배가 고파온다.
그래서 음식을 찾지마는
가도가도 무인지경이니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참 가다가 보니
마을이 아득하게 보여온다.
아슴하게 보여진다.
나는 더없는 기쁨으로
걸음을 빨리빨리 걷는다.
이 길을 가는 행복함이여.


-천상병시 '길' 전문




저것 앞에서는
눈이란 다만 무력할 따름
가을 하늘가에 길게 뻗친 가지 끝에,
점찍힌 저 절대 정지를 보겠다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미묘하기 그지없는 간극을,
이어주는 다리는 무슨 상형인가.

저것은
무너진 시계 위에 슬며시 깃을 펴고
피빛깔의 햇살을 쪼으며
불현듯이 왔다 사라지지 않는다.

바람은 소리없이 이는데
이 하늘, 저 하늘의
순수 균형을
그토록 간신히 지탱하는 새 한 마리.


   -천상병시 '새'전문





넋이 있느냐 없느냐, 라는 것은,

내가 있느냐 없느냐고 묻는 거나 같다.

산을 보면서 산이 없다고 하겠느냐?

나의 넋이여

마음껏 발동해 다오.

내 몸의 모든 움직임은,

바로 내 넋의 발동일 것이니,

내 몸은 바로 넋의 가면이다.

비 오는 날 내가 다소 우울해지면,

그것은 즉 넋이 우울하다는 것이다.

내 넋을 전세계로  해방하여

내 넋을 널찍하게 발동케 하고 싶다.


-천상병시 '넋'전문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천 상병 시 ‘소릉조(小陵調)‘
출전 : 시집 '주막에서'(1979)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 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 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천 상병 시 ‘ 나의 가난은’




그날을 위하여
오후는
아무 소리도 없이...

귀를 기울이면
그래도
나는 나의 어머니를 부르며
울고 있다.

멀리 가까이
떠도는 하늘에
슬픔은 갈매기처럼
날아가곤 날아가곤 한다.

그것은
그 어느날의 일이었단다.
그 어느날의 일이었단다.

그리하여
고요한 오후는
물과 같이 나에게로 와서
나를 울리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 천 상병 시 ‘ 오후 ‘




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 천 상병 시 ‘들국화’




나는 새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텔레비 옆에 있는 세 마리 새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왜나하면
진짜 새가 아니라
모조품이기 때문이다.

한 마리는 은행에서 만든 저금통 위에 서 있는 까치고
두 마리는 기러기 모양인데
경주에서 아내가 사가지고 왔다.
그래서 세 마리인데
나는 매일같이 이들과 산다.

나는 새를 매우 즐긴다.
평와롭고 태평이고 자유롭고
하늘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을
진짜 새처럼 애지중지한다.


- 천 상병 시 ‘ 새 세마리’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천 상병 시 ‘강물’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꽃
뭇 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
이 나그네는 바람
정처없이 목적없이 천천히

보면 볼수록 虛虛한 모습
통틀어 무게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上空 수놓네


- 천 상병 시 ’ 구름‘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천 상병 시 ‘ 바람에도 길이 있다‘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백오십 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가방들고 지나는 학생들이
그렇게도 싱싱하게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오는 아침의 이 신선감을
나는 어이 표현하리오?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감으리오.


- 천 상병 시 ‘비 오는 날‘




무한한 하늘에
태양과 구름 더러 뜨고,
새가 밑하늘에 날으다.

내 눈 한가히 위로 위로 보며
바람 끊임없음을 인식하고
바람 자취 눈여겨보다.

아련한 공간이여.
내 마음 쑥쓰러울 만큼 어리석고
유한밖에 못 머무는 날 채찍질하네.


- 천 상병 ‘하늘’




1.

깊은 밤
멍청히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소리가 난다.
방안은 캄캄해도
지붕 위에는
별빛이 소복히 쌓인다.
그 무게로 살짝 깨어난 것일까?
그 지붕 위 별빛 동네를 걷고 싶어도
나는 일어나기가 귀찮아진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일까?
지붕 위
별빛 동네 선술집에서
누가 한잔 하는 모양이다.
궁금해 귀를 쭈삣하면
주정뱅이 천사의 소리 같기도 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요절한 친구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닐게다

저놈은
내 방을 기웃하는 도적놈이다.
그런데 내 방에는 훔쳐질 만한 물건이 없다.

생각을 달리 해야지.
지붕 위에는 별이 한창이다.
은하수에서 온 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겁이 안 난다.

놈도
이 먼데까지 와서
할일없이 나를 살피지는 않을 것이다.
들어오라 해도
말이 통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뚜렷한 우리말로
한마디 남기고
놈은 떠났다.

"아침 해장은 내 동네에서 하시오"

건방진 자식이었는가보다.


2

비칠듯 말듯
아스름히 닿아오는

저 별은
은하수 가운데서도
제일 멀다.

이억광년도 넘을 것이다.
그 아득한 길을
걸어가는지
버스를 타는지
택시를 잡는지는 몰라도
무사히 가시오.


- 천 상병 시 ‘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




아름다워라, 젊은날 사랑의 대꾸는

어딜 가?
어딜 가긴 어딜 가요?

아름다워라, 젊은날 사랑의 대꾸는
널 사랑해!
그래도 난 죽어도 싫어요!

눈오는 날 사랑은 쌓인다.
비오는 날 세월은 흐른다.


- 천 상병 ‘회상1’




나는 무수한 우수한 사람들 아는데
이분들게 감사론 말씀 이는데
다만 묵묵부답이다.

나의 18번(十八番)은
그저 곡차(막걸리)마시는 것 뿐인데
저녁 6시에 한통 사면
옆의 처남 부르고
몇 시간이고 가니
어찌 술이라 하겠는가?

인생은 소중(所重)하고
고귀(高貴)한 것이니
함부로 헛되게 쓸소냐?
중국의 만만디이(慢慢的)란 말은
일을 서둘지 않고
급하거든 멀리 가라는
인생 탐욕인데
이 탐욕앞에서는
그저 허허 웃음뿐이다.
우리는, 시간을 아껴 쓰는 것 좋고
다 좋지만은
인생을 느긋하게 복되게 사는 것을
무슨 일 하고도
바꾸지 말 일이다.


- 천 상병 사 ‘곡차’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문학사에서 날 돌봐 주고
몇몇 문인들이 날 도와 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 천 상병 시 ‘ 나의 가난함‘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느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천 상병 시 ‘ 행복’




아침은 매우 기분 좋다
오늘은 시작되고
출발은 이제부터다

세수를 하고 나면
내 할 일을 시작하고
나는 책을 더듬는다

오늘은 복이 있을지어다
좋은 하늘에서
즐거운 소식이 있기를


- 천 상병 ‘아침’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

비여..
나를 사랑해 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밤의 골목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

비여..
나를 용서해 다오.


- 천 상병 시 ‘ 장마‘




부실부실 아기비 내린다.
술 한잔 마시는데, 우산 들고 가니
아기비라서 날이 좀 밝다.

비는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맞았겠지.
공(公)도 없고 사(私)도 없는 비라서
자연(自然)의 섭리의 이 고마움이여!

하늘의 천도(天桃)따라 오시는 비를
기쁨으로 모셔야 되리라.
지상(地上)에 물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것을


- 천 상병 시 ‘ 아기비 ‘




내 마음의 마을을
구천동(九千洞)이라 부른다.
내가 천씨요 구천(九天)만큼
복잡다단한 동네다.

비록 동네지만
경상남도보다 더 넓고
서울특별시도 될 만하고
또 아주 조그만 동네밖에 안될 때도 있다.

뉴욕의 마천루(摩天樓)같은
고층건물이 있는가 하면
초가지붕도 있고
태고시대(太古時代)의 동굴도 있다.

이 마을 하늘에는
사시장철 새가 날아다니고
그렇지 않을 때는 흰 구름이 왕창 덮인다.

이 마을 법률은
양심(良心)이 있을 뿐이고
재판소(裁判所) 따위로는
양심법 재판소(良心法 裁判所)밖에는 없다

여러 가지로 지적(指摘)하려면
만자(萬字)도 모자란다
복잡하고 복잡한 이 마음 마을이여


- 천 상병 시 ‘ 마음 마을’




나는 술을 좋아한다.
그것도 막걸리로만
아주 적게 마신다.

술에 취하는 것은 죄다.
죄를 짓다니 안 될 말이다.
취하면 동서사방을 모른다.

술은 예수 그리스도님도 만드셨다.
조금씩 마신다는 건
죄가 아니다.

인생은 苦海다.
그 괴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술뿐인 것이다.


- 천 상병 시 ‘술’




내 육신(肉身)에는 날개가 없어도
내 마음에는 날개가 있다.
세계 어디 안가본 데가 없다.
텔레비전은 마음 여행의 길잡이가 되고
상상력(想像力)이 길을 인도한다.
북극(北極)에도 가 보고
남양(南洋)의 오지(奧地)에도 가보았다.
하여튼 내가 안 가본 곳이란 없다.
내 마음엔 날개가 있으니까.


- 천 상병 ‘마음의 날개’




보통으로 서양사람의 나이를 만으로 치고 동양사람의 나이는 만이 아니라고 한다.
사실은 반대다. 우리 동양사람의 나이는 분만때부터이고 서양사람의 나이는 났을 때부터이다.
그러니까 만으로 치면 동양사람의 나이가 만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태교라는 말이 있는데 서양사람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분만때부터 나이를 따지는 동양사람에게만 태교가 해당되는 것이다. 뱃속에서 열 달, 약 1년을 지내고 태어난다. 그 1년을 동양사람은 합산하는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의 나이는 다 서양사람식이다.
그러나 실제 나이는 동양 나이가 옳은 것이다. 진짜 만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왜 서양 나이를 옳다고 하는가 말이다.
동양사람들은 지혜가 있어서 분만때부터를 나이로 치지만 서양 나이는 날때부터이다.
나는 큰 소리로 부르짖고 싶다. 우리 동양사람의 나이가 옳다고!
요새는 서양문명이 위니까 다 서양 나이로 따지지만 나이만은 동양사람의 나이가 옳다.
나는 1930년생이다. 그래서 동양식으로 63살이라고 부르짖고 있다. 이것이 옳은 방법인 것이다.
서양식으로 따진다면 62살이겠지만 굳이 나는 동양 위주로 63살이라고 부르짖는다.
나는 아까 태교라고 했지만 뱃속의 아이에게 교육을 시키는것이 태교이다. 날 때부터서 나이를 계산한다면 태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아무리 서양의 문명이 발달되었다고는 하나 나이 계산법만은 동양에 훨씬 뒤진다.
신문이나 방송은 이 점을 알아가지고 동양 나이 위주의 방송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응당할 것이고 합당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부끄러워해는 안 된다. 동양 나이야말로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이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서양 나이로는 한 살 덕을 보지만 인생에는 하등 상관이 없다.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잘 되어가는데 왜 나이만은 무식한 서양 나이를 고집하는 것일까.
근대화 이후의 서양 우세가 서양 나이를 정당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 나이만은 분만때부터를 지키는 동양사람이 정당한 것이다.
뱃속의 아기를 괄시하다니 서양사람들도 참 무식하다. 제아무리 딴 분야에서는 서양사람이 좋다고 하더라도 나이 계산법만은 서양인들은 동양인에 뒤져있다.
여러분!
이것을 명심하여 절대로 서양 나이를 따르지 말자!

- 천 상병 ‘서양사람과 동양사람의 나이차이‘



우리 부부에게는 어린이가 없다.
그렇게도 소중한 어린이가
하나도 없다.

그리서 난 동네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요놈! 요놈하면서 내가 부르면
어린이들은 환갑 나이의 날 보고
요놈! 요놈한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좋다.
잘 커서 큰일 해다오..!


- 천 상병 ‘난 어린애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 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 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無能力者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오월 사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 .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쿨 뭉쿨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이
"시끄럽다 - . 잠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草者는 어쩌지 못했어요 - .


- 청 상병 시 ‘ 내가 좋아하는 女子‘




친구가 멀리서 와,
재미있는 이야길 하면
나는 킬킬 웃어제킨다.

그때 나는 기쁜 것이다.
기쁨이란 뭐냐? 라고요?
허나 난 웃을 뿐.

기쁨이 크면 웃을 따름.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라.
그저 웃음으로 마음이 찬다.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
生色이 나고 활기가 나고
하늘마저 다정한 누님 같다.


- 천 상병 시 ‘기쁨‘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왜 하느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이었는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성취다.
하느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


- 천 상병 시 ‘날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 상병 시 ‘귀천’
_《귀천 Back to Heaven》/도서출판 답게, 2001




* 천 상병: 1945년 일본에서 귀국, 마산에 정착했다. 1949년 마산 중학 5년 재학 중 당시 담임 교사이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시 '강물'이 <문예>지에 추천되었다. 1950년 미국 통역관으로 6개월 근무하였으며, 1951년 전시 중 부산에서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하여 송영택, 김재섭 등과 함께 동인지 "처녀지"를 발간하였다. <문예>지 평론 "나는 겁하고 저항할 것이다"를 전재함으로써 시와 평론 활동을 함께 시작하였다. 1952년 시 '갈매기'를 <문예>지에 게재한 후 추천이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1954년 서울대 상과대학을 수료하였으며, 1956년 <현대문학>지에 집필을 시작으로 외국서적을 다수 번역한 바 있다. 1964년 김현옥 부산시장의 공보비서로 약 2년 간 재직하다가 1967년 동백림 사건(간첩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 약 6개월 간 옥고를 치르고 무혐의로 풀려난 적이 있다. 1971년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생활에서 오는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서울 시립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다.

그 사이 유고시집 <새>(조광)가 발간되었으며, 이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에 유고시집이 발간된 특이한 시인이 되었다. 1972년 친구 목순복의 누이동생인 목순옥과 결혼한 후 1979년에 시집 <주막에서>(민음사),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오상사)를, 1985년에 천상병 문학선집 <구름 손짓하며는>을, 1987년에 시집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일선)을 출간했다. 1988년 간경화증으로 춘천 의료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도중,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통고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회생하였다.

1989년 시집 <귀천>(살림), 공동시집 <도적놈 셋이서>(안의), 1990년 수필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강천), 1991년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놈>(답게), 1993년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을 간행하였다. 1993년 4월 28일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