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초당, 발 없이 걷듯, 젊은 시인에게, 썸네일형 리스트형 지식인의 삶과 사랑 - 황 동규 시. 가을이 너무 깊어 갈수록 철 지난 로봇처럼 되는 몸 길이나 잃지 말아야겠다. 길이라니? 버스와 전철 번갈아 타고 걸어 서촌보다 더 서쪽 동네 가게에 들러 맥주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인왕산 서편을 달관한 로봇처럼 천천히 걸으며 빈 나무에 단풍 몇 잎 떨어지지 않고 모여 가르랑대고 있다. '이제 말 같은 건 필요없다. 가르랑!' 로봇도 소리 물결 일으킨다. '평생 찾아다닌 거기가 결국 여기?' 그래, 내고 싶은 소리 다들 내보게나. 숨 고르려 걸음 늦추자 마침 해 지는 곳을 향해 명상하듯이 서 있는 사람 하나 있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로봇이군. 방해되지 않을 만큼 거리 두고 나란히 선다. 흰 구름장들 한참 떼 지어 흘러가고 붉은 해가 서편 하늘을 뜬금없이 물들이다 무엇엔가 빨리듯 하늘 뒤로 넘어간다. 옆.. 더보기 이전 1 다음